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왔다. 나무들은 푸른 잎새들을 준비하고, 꽃과 바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겨울이 길게 춥게 느껴졌던 만큼 따뜻한 봄이다. 아마 나이 들면서 가장 몸에 와 닿는 건 이처럼 변함없는 자연의 순리일 것이다. 봄이 오면 여름이 오고 또 그 다음엔 가을, 겨울이 오는 자연의 섭리. 봄은 우리 인간도 이러한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게 해준다. 태어나고, 살고, 죽어 우주의 티끌이 되지만, 봄과 같은 어린 아이들을 통해 다시 그 생을 이어갈 것이라는.
그래서 봄은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의 활력이다. 산에는 겨우내 얼었던 땅을 뚫고 지천으로 개나리, 진달래가 피어나고, 풀잎들이 돋아난다. 이를 보고 있노라면, 생명이 얼마나 끈질기고, 또 어여쁜 것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나 겨울의 추위가 없다면 아마도 봄은 우리에게 아무런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그처럼 길고 추운 한파가 있었기에 새싹의 의미가 더 값진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우리들은 꽃 한 송이가 피워 올린 푸름을 통해 얼마나 많은 것을 얻게 되는 것일까. 벚꽃놀이니 뭐니 하는 패키지 관광상품을 따라 다들 남쪽으로 내려가곤 하지만, 그것은 꽃을 만지고 느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업주의적인 목적에 휩쓸린 먹고 마시는 소비적 놀이에 불과하다. 먹고 마시는 것 나쁘지 않다. 그러나 꽃은 관광의 대상이기 이전에 우리 삶을 돌아보고 인생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하는 그런 존재가 아닐까. 즉, 돈을 주고 사는 상품이 아니라 삶의 한 부분으로 다가오는 자연 말이다.
오래 전 필자가 어린 시절, 진달래꽃은 배고픈 배를 채워주던 꽃이었다. 그 시절엔 진달래꽃 꼭지를 따 입에 물고 빨아먹던 아이들이 참 많았다. 딱히 군것질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더 그랬겠지만 아이들은 허기지면 산을 휘젓고 돌아다니며 진달래꽃을 따먹곤 하였다. 그러고 나면, 아이들 입술은 온통 멍든 것처럼 파란 물이 들곤 하였는데, 그것이 서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였다. 꽃은 우리의 삶과 함께 존재하는, 아름답고 슬픈, 그러나 가치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벚꽃이 아무리 화려하다해도 우리가 따먹던 그 허기진 진달래꽃 만하겠는가.
그뿐인가, 화전놀이라고 해서 우리네 민족은 진달래꽃을 찹쌀반죽 위에 얹어 기름에 투명하게 지져 달달한 꿀물이나 설탕물에 재워 먹던 풍습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 모두 들에 나와, 돌을 괴어 솥뚜껑을 얹고 화전을 해먹던 풍습은 지금도 내가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즐거운 봄꽃에 관한 추억이다. 꽃이 음식이 될 수 있다는 건 지금 생각하면 참 우리 민족이 멋을 알고 풍류를 알았던 민족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고 또 무엇인가. 그러므로 꽃은 단지 꽃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기도 하다.
내 고향 남원에서도 봄마다 철쭉제가 열린다. 사람들은 산등성이에 온통 분홍빛으로 피어난 철쭉꽃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어떤 이는 떠난 사람을, 어떤 이는 만날 사람을, 또 어떤 이는 못 다 이룬 소망을, 또 어떤 이는 잃어버린 순수의 감정들을……. 아픔이든 기쁨이든 그것은 분명 꽃이 주는 선물이다. 이 우주, 이 자연이 우리에게 준 가장 원초적이고 아름다운 선물. 그러니 꽃이 피어나면 무엇보다 제 마음을 들여다 볼 일이다.
지금 창문을 열어 보자. 저 밖에 피어난 꽃들을 보고 조금의 여유를 가져 보자. 멀리 가지 않아도 좋다. 겨울을 이기고 올라온 봄꽃을 통해, 우리의 바쁜 일상에 단 한 순간이라도 쉬어갈 수 있는 마음의 쉼터를 만들어 보자.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꽃놀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람아, 사람아, 꽃놀이 가자꾸나.
/신흥수(재경 남원향우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