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당원과 주민들은 그야말로 ‘난무하는’ 공약 중 어느 게 참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이번 선거만큼은 정책 선거를 지향하자는 언론의 보도 방향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은 공약(公約)과 공약(空約)을 구분하기가 어렵다고 호소한다. 연일 후보들이 내놓는 그 많은 공약을 단 몇 시간 안에 검증하는 시스템이 없어서다.
다시말해 후보자가 제시하는 선거 공약의 구체적 실천계획을 검증하자는 메니페스토(manifesto) 운동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이 운동을 주도하는 시민단체에 시골의 공약까지 재원조달 방안과 등을 분석할 일손이 없는 게 현실이다. 큰 선거만 검증하기도 벅찰 지경인 것이다.
사실 광역선거의 정책 검증도 중요하지만 지방자치의 뿌리가 되는 기초선거의 공약도 그에 못지않게 소중하다. 그런 면에서 우리지역 언론들이 메니페스토 운동을 선언한 일은 선거보도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일이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지방언론의 메니페스토 운동 또한 녹록치 않다. 왜냐면 이 운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을 찾기 힘들어서다. 하루종일 취재와 기사 작성에 매달려야하는 기자들에게 공약 검증을 맡기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관련 교수 등 전문가 집단들이 검증을 주도해줘야 되는 데 그게 그렇지 않다.
‘난다 긴다’하는 교수들은 이미 어느 캠프인가에 몸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네들이 만든 공약을 검증해달라 할 수도 없고, 상대 후보의 공약과 자신들이 속해잇는 후보 진영의 공약을 같은 잣대로 분석하리라고 믿기도 힘들다. 그나마 캠퍼스에 남아있는 교수들은 검증단 참여 요청에 손사래를 치기 일쑤다.
평소 언론에게 정책위주의 선거 보도를 주문하는 대구가톨릭대 언론광고학부 최경진 교수는 이런 현상을 두고 “교수 집단이 정말로 반성해야 한다”고 꼬집는다. 시류에 영합하거나 행동하지 않는 지성들을 향한 통박이다.
이러한 세태 때문에 메니페스토 운동의 가치를 평가절하 할 수는 없지만 결국 이번에도 공약 검증은 유권자 몫임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럼 유권자 스스로 공약을 검증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울까? 아니다. 간단한 방법이 있긴 하다.
일단, 후보들이 내건 공약집을 안방과 사무실서 펼친다. 그리고 빨간 펜을 들고 하나씩 점수를 매긴다.
“서해안 시대의 중심지로 자리잡겠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겠다” “생태환경이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만들겠다” 등등의 두루뭉실 뜬구름 잡는 공약은 칼같이 0점 처리한다.
“30억짜리 노인회관을 짓겠다. 이 돈은 우선 순위를 늦출 수 있는 나무 심기 예산을 대체해서 확보한다. 임기가 끝나기 1년 전 까지 완공하겠다. 이 회관이 지어지면 연간 10만명의 노인들이 취미활동과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 검증과 분석이 더 있어야겠지만 이 공약은 50점 이상을 줘도 아깝지 않다.
그런 식으로 채점한 후 높은 점수의 후보를 선택하면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경선이든 본선이든 방식은 다 같다.
메니페스토 운동도 그 같은 일을 하자는 취지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유권자 스스로 공약을 뜯어보면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웬만큼은 가려낼 수 있다. 조금 어려우면 운동본부에 문의하면 된다. 전화 한통화로 내고장 일꾼을 잘 가려낸다면 비용치고는 너무 싼 것 아닌가.
메니페스토, 이제 당신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