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백의 一日五話] 초대 부통령 성재 이시영 서거

문단의 이단아 이상 타계

①초대 부통령 성재 이시영 서거

 

1910년 나라가 망하자 6형제가 가족 50여명을 이끌고 만주에 망명, 독립운동을 하다가 3?1운동 후 임시정부에 참여했고, 8?15 해방과 더불어 귀국, 1948년 초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1953년 4월 17일 85세로 서거.

 

②문단의 이단아 이상 타계

 

소설 ‘날개’로 세상에 냉소와 독살을 쏟았던 시인 이상(李箱)은 난해 시 등으로 우리 문단의 이단아였다. 당초 건축 기사였던 그의 본명은 김해경(金海卿). 1937년 오늘 결핵으로 사망했다.

 

③일본 국가예산의 4년 분

 

청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 속에 1895년 4월 17일 전쟁종결의 강화조약이 조인됐는데 청국의 배상금은 2억 냥이었다. 이 돈은 당시 일본 국가예산의 3~4년 분.

 

④“스스로 총통을 획책”하고….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신민당 김대중 후보는 1971년 4월 17일 전주유세에서 “박정희 후보가 또다시 당선되면 이번엔 스스로 총통이 될 것”이라고 공박, 이날 청정수는 약 6만 명.

 

⑤두 사건에 극형 선고

 

1961년의 오늘 열린 서울지법에서는 3?15 부정 선거 원흉인 최인규에 사형, 이강학 등엔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또한 김창룡 중장 살해사건이 군재서 강문봉 중장에 사형선고. (뒤에 무기로 감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