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철의 건축이야기] 건축물은 그 시대의 자화상

대형걸개 인물사진

벚꽃이 만발한 지금은 확실히 정치의 계절이다. 눈에 좀 띨만하다 싶은 주요 네거리 건물마다 대형걸개 인물사진이 보란 듯이 내걸려 있다. 디지털 시대의 사진기술 탓인지 후보들의 얼굴 하나하나가 마치 건물크기만 하게 커졌다. 그리고 뭐가 그리 기쁘고 좋은지 하나같이 환하게 웃고들 있다.

 

지금 시민들은 FTA(한미자유무역협정) 협상에 불안해하고, 극심한 빈부 격차에 시달리며 이젠 세상 살맛조차 잃어버렸다는데, 그 시민들을 위해서 일을 하겠다고 선거에 나선 사람들은 저렇게 한결같이 말쑥한 차림으로 웃고 있는 것이다.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고 정치는 그 천심을 읽는 것이 먼저라고 했는데, 아마도 민심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환기를 하고, 채광의 통로가 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조망(眺望)의 장소가 되라고 만든 창문까지 저렇게 대형걸개사진으로 가려놓은 지금, 우리 시내의 거리풍경은 확실히 이상해졌다. 비록 선거 때까지 한시적인 현상이라고는 하지만, 거리풍경이 바뀌어버린 것이다. 물론, 건물주인들은 상당히 고무되어 있을 것이다. 건축물이 그동안 단순히 전세를 받고 월세만 받던 고리타분한 대상에서 벗어나, 이젠 본의 아니게 새로운 부업의 시대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건축물을 더 크고, 더 넓고, 또 더 높게 설계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그러나 그동안 건축물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광고간판 때문에 훼손되었던 건축물의 설계이미지와 도시경관은 이제 다시 새로운 도전을 받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건축물이 하얀 두건을 쓰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 탈춤을 출 때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 건축물에 탈바가지를 씌워놓은 것 같다. 속이야 어떻든 거의 모든 후보들이 안동 하회탈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하회탈이라면 저 몸짓 저 손짓 저 웃음이 모두 다 조롱과 풍자를 담은 가짜라는 얘기인데, 정치란 그 출발인 선거부터 그렇게 속과 겉이 다른 가짜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웅변해주는 것 같다.

 

건축물이란 그런 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그렇게 그 시대를 말없이 비춰주는 거울이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도시의 주요 네거리마다 보란 듯이 걸려있는 저 대형걸개 인물사진에서, 지금 우리는 우리 사회의 혼란스러운 자화상을 비춰보고 있는 것이다.

 

/삼호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