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물결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는 것이 지방, 곧 도시의 경쟁력이다. 더 많은 사람과 돈을 끌어들여 주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경쟁이 국내의 지역간 경쟁에서 세계의 도시간 경쟁으로 확대된 것이다. 이런 추세를 世方化(gloca lization)라 부른다.
세방화 시대에 있어서 경쟁력의 기반은 사람과 돈과 정보와 지식, 문화, 서비스 등이다. 이들은 살고 싶은 환경과 인프라가 갖추어진 도시에 모이며, 서로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도록 체계화, 산업화되어 경쟁력을 강화한다.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도시를 보면 인구가 100만이 되지 않는 곳도 많다. 반면에 인구가 1000만이 넘는 거대도시면서 경쟁력이 없어 세계도시로 발전하지 못하는 곳도 많다. 이러한 도시는 대체로 살기가 불편하다. 우리나라의 도시들이 그렇다.
캐나다 머서휴먼리소스컨설팅이 215개 도시의 삶의 질을 비교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의 경쟁력은 89위다. 겨우 중간 수준을 넘었다. 나머지 도시들은 언급할 필요가 없다. 이 비교는 집값, 교통, 치안, 의료, 교육처럼 주민생활과 밀접히 관련된 항목과 함께 정치적 안정, 문화자산, 언어소통 등도 포함되어 있다. 경쟁력 있는 도시들은 대체로 자연환경과 문화자원이 조화를 이루면서 잘 정돈되어 있고 깨끗하며 아름답고 친절한 곳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40여년간의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도시를 경제발전의 수단으로만 여겨왔다. 공장과 집, 도로, 공공시설 등이 필요하면 주민의 삶의 질을 생각하기보다는 땅값이 싼 곳을 찾아 여기저기에다 무분별하게 건설하였다. 건축물들은 어디나 똑 같고 제멋대로 지어졌다. 도시외곽은 주변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고층아파트 숲이다. 그러다보니 도시는 불편하고 세련되지 못했다. 도시문화가 남아 있는 구시가지는 낡고 오래된 건물만 있는 쇠퇴지역으로 바뀌었다.
국민소득 3만불이 넘는 선진국이 되려면 세계가 알아주는 경쟁력 있는 도시가 만들어져야 한다. 압축성장시대의 획일적인 물적 환경으로는 세방화시대에 걸맞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기반시설이 갖추어져 있고 전통문화가 살아있는 구시가지에 세계적으로 팔릴 수 있는 우리 고유의 다양한 문화활동과 볼거리, 먹을거리, 쇼핑기회 등을 되살려야 한다. 지식정보산업이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주택과 도시환경을 깨끗하고 쾌적하게 재정비해야 한다. 건축물은 개성이 있으면서 세련되게 지어 세계적 명물이 되어야 한다.
마침 낙후된 구시가지의 재정비를 촉진하기 위한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이 오는 7월부터 시행된다. 이 법률은 용도지역의 변경, 용적률 완화 및 이전, 층수제한 폐지, 임대주택 의무건설 축소 등 구시가지의 광역적 재정비를 촉진할 혜택이 많다. 도심이나 구시가지 정비지역을 적어도 15만평 이상으로 확대하여 부족한 도로 공원 등의 도시기반시설을 대폭 확충할 수 있다. 고층 건축물과 주택을 새로 지을 수 있어 도시의 기능을 재생할 수 있다. 도시재정비 특별법의 시행에 발맞추어 구시가지를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하루 빨리 가시화할 때다.
/박헌주(주택도시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