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주보기] 한 보수 논객의 '용기' - 김정수

김정수(극작가)

독도가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며칠 전 한일 외무차관 합의 3개항이 발표되면서 일단 시간을 버는 모양새를 갖췄지만, 미봉책에 불과한 굴욕적 협상이라는 불만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독도가 당연히 우리 땅이라는 생각은 우리들만의 생각이었을까요?

 

갈등의 원인이 독도의 영유권에 직결되어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압니다. 일본은 수 십년동안 틈만 나면 독도문제를 쟁점화하기 위해 노력해왔으니까요. 잊혀질만하면 독도문제를 거론하고, 한국민의 저항이 거세지면 사무라이 정신으로 옷을 벗는 일본관료들의 행태만봐도 일본 보수우익의 뿌리 깊은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흥분한 이런 상황에서, 당신은 사고의 진정한 유연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어떤 국제적 분쟁도, 국가적 위기도 지난 시기의 이념의 자로 재단할 수 있다는 독특한 생존방식을 일러주었으니까요. 그 누가 아무리 당신을 일컬어 친미의 도를 지나쳐 굴미의 태도를 위장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아가 일본까지 하늘처럼 떠받들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더라도, 가미가제 정신이 영원하듯, 우리의 위대한 보수는 죽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무도 상종할 논객으로 치부하지 않는 외로움을 딛고, ‘적화’라는 지난 세기의 쓰레기 같은 용어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국익이고 나발이고 간에 오로지 수 십 년 묵은 냉전이데올로기를 창 삼아 천둥에 개 뛰듯 휘둘러대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세계에서 가장 부자 나라인 일본을 적으로 돌리고 세계에서 가장 못살며 잔혹한 집단인 북한과 세계에서 가장 큰 일당 독재국가와 친구가 되겠다는 자살 충동을 억제해줄 세력이 한국에 과연 있는가”라는 당신의 비분강개의 목소리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국민 모두가 “예”라고 대답할 때, 홀로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진정한 용기에서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우리 보수에겐 왜 자살충동이 없을까 하는 것입니다. 일본에 간 김에 용기있게 할복 자살하여 꿈에도 그리던 조국 수호와 적화 방지의 일석이조를 거둘 수도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대안 없는 충동질이 주특기라 하여도, 일본의 드라이아이스 전략에 말리지 않고 조용히 독도를 헌납하자는 주장이 아니라면, 한번쯤 시도해볼만한 이벤트였을 것입니다. 그 것은 이 땅의 보수 우익이 평생 꾸어온 꿈 아니었던가요?

 

최근 한일간의 문제를 지켜보면서, 우리의 용감무쌍한 극우 보수인사가 핵으로 일본을 쓸어버리자 주장하던가, 하다못해 일본에 건너가 테러나 분신자살을 한다면…, 그래서 양국관계를 미묘하게 만들어버리면 어떻게 할까 하는 걱정을 다해봤습니다. 그러나 그건 기우였습니다. 참 다행입니다. 우리의 보수는 영원히 살아야하니까요.

 

이번 기회는 우리 보수의 실체를 드러내는 결정적인 것이었다 생각합니다. 아, 참! 그런데 외롭게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을 뒤틀린 궤변으로 곡해하여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또 걱정입니다.

 

“제발 너나 걱정하세요”

 

/김정수(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