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사가 예정된 대로만 진행된다면 미리 준비하지 않을 리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할 때가 적지 않다. 그래서 상당수 일들은 사전에 준비할 겨를도 없이 겪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일 중에 상사(喪事)야말로 가장 힘든 경우에 속한다.
어느 죽임인들 아쉽지 않을까마는 천수(天壽)를 다한 이들의 유족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어렵사리 학교를 다니다가 급작스럽게 삶을 마감하는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부모의 마음에는 비길 데가 없지 않나 싶다. 이런 경우 사람마다 슬픔을 삭이는 방법이 다르겠지만 죽은 자식을 위해서 못다 이룬 학업을 마무리지어 주고 싶은 부모들도 있다.
한 여학생이 졸업을 앞둔 지난 해 12월 교통사고로 숨졌다. 아버지의 직업때문에 이 곳 저 곳으로 전학 다녔던 이 학생은 고등학교를 입학한 데서 졸어하려고 학교 앞에서 자취까지 하는 정성을 보였다고 한다. 이런 딸이 졸업장을 받을 줄 알았던 유족들은 졸업식이 끝난 뒤에야 딸이 졸업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학교측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돌아온 것은 규저에 없다는 대답뿐이었다고 한다.
학교에서 이수해야 하는 모든 교육과정을 마친 딸이 졸업장을 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유족들의 주장도 맞는 이야기이고 유명을 달리 한 학생에게 졸업장을 줄 수 있는 규정이 없어서 못 준다는 학교 당국자의 입장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학교측에서 보면 자식을 잃은 슬픔 속에 있는 유족의 요구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딱한 입장이었던 모양이다. 결국 학교측은 교육부에 질의를 해서 명예졸업장은 가능하다는 답을 듣고 규정을 따로 만들어서 명예졸업장을 주기로 했다고 한다.
통상적으로 규정은 다수를 위해서 만든다. 하지만 이런 경우처럼 극소수를 위한 규정도 필요하다. 명예졸업장이든 아니면 다른 무엇이든 유족들에게 전달하는 내용이 중요한 것은 결코 아니다. 진정 주요한 것은 그로 인해서 유족들이 위로를 받았겠는가 하는 점이다. 모르기는 해도 매년 이와 비슷한 일들은 여기저기에서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관련 규정이 마련되지 않았다면 유족들은 위로받기보다는 마음 상하는 일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소수를 배려할 줄 아는 사회가 건강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