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약속 체계인 언어가 그렇다. 집단만의 속어가 과도하게 발달하는 것도 그렇고, 일상적으로 외래어도 아닌 외국어를 그대로 쓰는 경우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많다. 방송 프로그램의 제목, 자막 문구, 거리의 간판, 대기업 상품의 회사명, 상품명, 로고, 광고 디자인 등이 외국어 일색인 경우가 차고 넘친다. 지금 이 시대에 외국어 몇자 해독하지 못하는 국민은 선착순에서처럼 낙오시키고 불이익을 주어야 마땅하다는 듯이. ‘참살이’, ‘누리꾼’과 같은 좋은 우리말 용어를 만들어 내는 뜻있는 이들의 노력이 무색해 진다.
부동산과 같은 재산 불리기도 무서운 선착순 경주다. 각종 대중 매체는, 이 거대한 무한 경쟁체제를 가동시키는 에너지의 원천으로서 ‘성공 신화’를 만들어 내는 마르지 않는 샘이다. 축재의 선착순이 군대의 선착순과 다르다면 전자의 경우는 자발적이고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학교 교육은 어떠한가? 일단 낙오하면 죽음이다. 이 또한 무서운 선착순 경주다. 군대와는 달리 이것은 장거리, 장기간의 경주다. 직장 생활도 별로 다르지 않다.
못생긴 것이 죄악시 되는 외모지상주의도 대책 없는 상업주의 선착순 경주다. 도시는 농촌을 소외시키고 수도권은 지방을 낙오시킨다. 중심 문화는 주변 문화에게 설 땅을 주지 않는다. 총체적, 의도적, 체계적으로 소수가 다수를 소외시키고, 낙오시키고, 배제시키고, 왕따시키는 문화다. 소외되는 다수는 소외시키는 소수에 편입되기 위해 모든 것을 건다. “대한민국 1%”와 같은 카피가 그래서 먹힌다. 의상의 유행 같은 것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거대한 ‘소외 게임’이다.
낙오된 이들을 위한 상품(?)도 세심하게 준비되어 있다. 그 박탈감, 열등감, 소외감, 울분, 무력감 등을 불식시킬 수 있는 것은 중독성이 있는 서비스나 행위여야만 한다. 마약, 도박, 알콜, 인터넷, 게임 등에 더하여 정부 차원에서 경마, 경륜사업을 시행하고 로또 사업도 벌인다. 인생 역전이라던가?
국제사회가 냉혹하기 짝이 없는 선착순 사회이기에 한 국가 한 민족 사회도 그러한 체제에 적응해야 할 것인가? 그러나 ‘선착순’에는 나라도 민족도 없다. 나나 내 가족을 위해서라면 국부를 부당하게 유출시킬 수도 있다. 그런 ‘묻지마 선착순’의 대가들이 100년 전 쯤 나라도 팔아 넘겼다.
다행이라면 아직 우리는 가족간에는 모든 것을 나누고 함께 가고 서로 돕는 경우가 많다. 배타적 가족주의의 폐해에도 불구하고 ‘선착순’이 없거나 덜한 유일한 사회가 가족 공동체이다. 세계화의 흐름을 타고 사회는 갈수록 ‘선착순 사회’가 될 것이다. 그 와중에 숨통은 그래도 가정이다. 물론 가족 공동체도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리고 있지만.
/최효춘(전북도립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