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근무하는 학교 주변에 조그맣게 벼농사를 짓고 텃밭을 가꾸며 대여섯 명의 자녀를 둔 학부모가 두 분이 있다. 이분들은 50대의 여자 학부형으로 결혼도 하지 않고 본인들이 낳지 않은 자녀를 기르는 모. 부자 가정으로 그 분들의 자녀 사랑이 남다르고 그 정성이 하늘에 닿을 듯하여 필자는 이 분들의 삶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우리는 흔히 연말 연시나 혹은 명절 때 양로원이나 불후시설 같은 곳에 돈 몇 푼 헌금하거나 국군 장병 위문 금 조금 내고 봉사했다고 생각하지 않나 뒤돌아 봐야 할 것이다. 봉사활동처럼 아름다운 가치가 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부와 명예를 얻게되면 배고프고 고생한 시절은 까마득히 잊게 마련이고 속인들은 그 생각조차 하기 싫은 것이 현실이 아닌가? 우리 세상의 가장 큰 문제중의 하나가 양극화 현상임을 모르는 이 그리 많지 않다. 그래도 우리 사회는 참으로 살아 볼만한 가치가 있다. 왜냐면 생활이 곤궁하여 어려움이 있다해도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고 육신의 힘이 있는 한 어둡고 그늘 진 곳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하는 이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매월 받는 적은 월급에서 월정 액으로 조금씩 떼어서 가정이 빈곤하여 학업을 계속할 수 없는 학생에게 학비를 보내주는 개인 회사의 사원들에게 필자는 학교장 이름으로 감사장을 보내기도 했다. 이 사람들이 말로 나는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삶을 사는 이 시대의 “슈바이쳐”라고 생각하며 존경받아야 할 사람들이라고 부언하고 싶다.
작은 것부터 그리고 내 주위에서부터 찾아보자. 공원이나 길가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것도, 이른 아침 학교 정문 앞에서 교통 정리를 하는 것도, 노약자를 보호하는 것도 봉사활동의 일환이다. 그도 저도 형편이 안 맞으면 본인의 처지에 맞는 금액을 자선기관에 월정 액으로 헌금하는 것도 아름다운 봉사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더욱 보기 좋은 것은 우리 주위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족단위로 쉬는 날을 택하여 불후 시설을 찾아가 그 분들과 함께 하루를 보내는 모습이다. 평준화 지역의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응시할 때 중학생이 내신성적으로 가지고 가는 70점의 성적 중 매 학년마다 18시간씩 3년 간 봉사활동을 했을 때 7%의 봉사활동 점수를 만점으로 받게된다. 학생들에게는 봉사라는 말을 가르치며 당락이 결정되는 치열한 경쟁시험에서까지 점수화 하면서 어른들은 과연 몇 점을 받을 수 있나 생각해 보면 나 자신부터 고개가 숙여진다. 왜 늦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제부터라도 내 주위의 어려운 이웃은 없는가 고개를 돌려보자. 그리고 지금 작게라도 시작을 해 보자.
/최상섭(시인. 금산중학교 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