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메아리] 아름다움을 지키는 사람들 - 함한희

함한희(전북대 문화인류학)

나는 얼마 전 아름다운 음악회를 다녀왔다. 그 곳에서의 느낀 특별한 감흥이 지금까지도 가시지를 않는다. 그 음악회는 25년 동안이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지속되어온 현을 중심으로 한 오케스트라의 44번째 정기연주회였다. 정기연주회가 그 정도이고, 특별연주회의 약사를 훝어 보니 몇 곱절이나 더 많았다. 우리고장처럼 예술을 사랑하는 지역이 아니면 엄감생심이다. 지방의 젊은 예술인들이 자꾸만 중앙으로 활동무대를 옮기고 게다가 지자체가 마련해주는 특별한 지원책도 없는 상황을 떠올리면, 그 음악단원들의 장인 정신은 누구에게라도 귀감이 된다. 그런가하면 음악을 사랑하는 주위 분들의 작은 정성들도 여간 소중해보이지 않는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처럼 자기 일을 사랑하는 일하며, 그것을 꾸준히 지속하는 일이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연륜이 쌓여서 아름다운 향기가 주위에 소리 없이 번져나간다. 그 향기로움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 향기가 번지는 속도는 누구도 가늠하기 힘들다.

 

예술이나 문화의 아름다움은 역사성에 있다. 다시 말해서 오랜 시간 동안 장인들이 갈고 닦는 전문성은 그것을 지키고자하는 숭고하고 고결한 정신에서 나오며 그러한 진실함과 역사성이 예술의 혼이며 꽃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신의 일을 마음 깊이 사랑하며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자부심과 품격을 갖추면서 예술의 맥을 이어온 장인들로부터 나오는 특별한 향기가 우리 고장에서는 이곳 저곳에서 풍겨나왔다. 장인들뿐만 아니라 그것을 사랑하는 일반사람들도 예술의 진실성과 역사성을 귀하게 여기면서 그 맥을 조심스럽게 잇게 하고자 노력을 함께 해 온 것이 우리고장의 장기였다.

 

그런데 점차 그 자랑거리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우려를 자아내는 일이 여기 저기에서 벌어지고 있다. 최근 한옥마을을 다니다보면 각별히 드는 생각이다. 역사를 훼손하는 일이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것을 잘 손질하고, 빛나게 가꾸는 일 보다는 헌 것을 과감하게 헐어내고 새것을 짓는 일들로 이곳저곳이 분주하다. 최신식 한옥이 속속 들어서고 있어서 보기에는 근사하다. 그 근사한 건물들을 보면서 우리가 공부할 수 있는 역사는 어떤 내용일까. 문화적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을까. 장인들이 품어내는 향기를 맡고자 천리 길을 마다않고 온 외부의 관광객들이 무엇을 느끼고 어떤 향기를 맡을 수 있을까. 새로 칠한 페인트냄새를 맡고자 먼 길을 달려온 것은 아닐 터인데...

 

역사를 부수는 현장을 보면서 실망한 마음이 지난 5월 작은 음악회에서 회복되었다. 그리고는 희망이 샘솟았다. 아직도 우리 고장에는 숨어있는 장인들과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에.

 

/함한희(전북대 문화인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