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더불어 사는 삶, 나누고 베풀고 - 김양일

김양일(수필가·전 경북매일신문 사장)

사람이 무엇 때문에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는 저마다 자신이 선택해야할 삶의 과제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들 각 개인이 이 세상에서 단하나 밖에 없는 독창적인 존재라는 사실이다. 단 하나뿐인 존재이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자기 자신답게 사는 일이 중요하다. 각자의 삶은 제멋대로 아무렇게나 사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삶과 조화를 이룰 때에만 그 가치를 누릴 수 있다. 이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고 더불어 사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개인이나 사회나 인간관계로 엮인 하나의 고리다. 누가 들어서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과 우리들 모두 각자가 뿌리고 가꾸면서 인생의 열매를 거둔다.

 

또 사람은 저마다 그릇이 다르고 삶의 몫이 있기 때문에 남의 그릇을 넘겨다 볼 필요도 없이 각자 자기 삶의 몫을 챙기면 된다. 그릇이 차면 넘치고 남의 몫을 가로채면 자기 몫마저 잃고 마는 것이 우주의 질서요 자연과 신의 섭리다. 세상에는 공짜도 거저 되는 일도 없다.

 

눈앞의 이해관계만 가지고 따지면 공것과 횡재가 있는 것 같지만 시작도 끝도 없이 흐르는 인간관계의 고리를 보면 매사 자업자득이고 인과응보의 결과다.

 

인생에서 불로소득은 없다. 횡재가 있으면 횡액이 따르기 마련이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다. 사람의 앞날은 한치도 예측할 수 없다. 나는 사실 60여 평생을 살고 있으면서도 내가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정확한 해답을 못 찾고 있따. 단 사는 날 까지 건강하게 법과 도덕과 양심에 어긋나지 않고 깨끗하게 인생을 마감해야 할 것이라고 고민한다. 그러면서 지혜와 베풂과 낮춤과 나눔과 기여의 삶을 살 것을 다짐한다. 그것이 사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인생은 사바세계라고 한다. 사바세계란 인생을 살면서 어려움을 참고 견디며 이기는 삶을 말한다. 강한 자는 덕을 쌓고 선행을 하고 자기를 이기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럴 때에 나는 작은 거인이라 불리고 강자의 삶을 살면서 어진마음, 지혜로운 마음, 덕스러운 평상심을 평생 잃지 않고 인생을 여유롭게 살아가는 외우(畏友)인 전 국가정보원장 晴沙 신건 박사(65)의 삶을 생각하고 지켜보면서 내가 살아온 베풀지 않고 참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했던 잘못 살아온 파란만장한 삶을 재조명해보고 참회하고 누구나 부러워하는 신건형의 잔잔하고 조용한 삶의 반면교사로 삼고, 이제부터라도 사람다운 보람 있는 인생을 살것을 다짐해본다.

 

작가 알베르카뮈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들 생애의 저녁에 이르면 우리는 얼마나 이웃을 사랑했느냐를 놓고 심판받을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동정과 이해심을 지니는 것, 자연스럽게 이웃을 돕는 일, 낯선 사람에게도 너그러운 것, 따뜻한 미소를 보내는 일, 누구에게나 친절한 것, 부드럽고 정다운 말씨를 쓰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사랑이며 베풂이고 행복이 아니겠는가.

 

행복이란 마음이 편안함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매사 인간관계에서 이웃으로서 도리를 다하는 이것이 믿음이고 소망이고 사랑이다.

 

지혜와 자비의 삶. 자비란 내 것을 남에게 주고 슬픔을 함께 나눈다는 뜻이다. 자비의 삶. 그것이 곧 인생이 아닐까. 지혜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이다.

 

최근 신건박사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꽃가지를 스쳐오는 부드럽게 향기로운 삶의 향기 같은 바람결을 느낀다.

 

삶의 향기란 맑고 조촐하게 사는 그 인품에서 저절로 풍겨 나오는 기운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신박사와 평생 잊지 못할 은혜를 간직하고 산다. 지난 93년 전북의 대표적인 언론사 사주로부터 사장 초빙 제의를 받았다. 결국 약속이 안 지켜졌지만, 전혀 일면식도 없었던 그 어른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그 어른이 어떻게 나를 알고 영입제의를 했는가 궁금했다. 93년 당시 신건 법무차관이 나를 추천했다는 사실을 몇 년 후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내가 참 미련하고 더듬한 사람이었다. 신건박사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나는 지금도 고향에서 일할 기회를 잃은 아쉬움이 남아있다.

 

 

서울법대 3년 재학 중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여 해군법무관으로 포항 해병대 사단에서 근무할 때 동해안의 명문가 규수인 한수의(64)여사와 결혼하여 1남 3녀 모두 가정을 이루고 누구나 부러워하는 부부애로 부모로서 할 일을 다하였다. 부모는 자식을 다 여워야 할 일을 다 한다고 했다. 오래전 포항출신 언론인인 박경석 전 국회의원으로부터 신박사 부부의 결혼, 연애사연을 들은바 있다. 어떻게 보면 당시 드물게 동서화합의 축복결혼의 물꼬를 튼 셈이다.

 

60년대 초 서울법대 재학 중 죽마지우인 연세대 재학생인 정삼규님과 우연히 중앙청에 마주한 작명가이며 관상가인 김봉수 선생을 찾았더니 신건님을 대뜸 보더니 작은 거인 장차 나라의 재상감이라고 일갈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지금은 조용히 살면서 오너로 있는 세계종합법무법인에서 일하면서 나라를 위해, 마지막 봉사를 위해 재충전하고 있다. 군사독재정권의 유산인 도청장치를 폐기한 민주화를 실천한 국가정보원장으로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우리 모두의 곁에 있는 사람, 신건박사를 지켜본다.

 

인생은 마지막이 아름다워야 한다. 그 마지막을 위해 우리 모두 열심히 성실히 바르게 살자, 남의 부탁을 받으면 되든 안되든 옳은 일이라면 최선을 다하는 晴沙의 자상하고 넉넉한 마음이 그립다. 알고 보면 의리와 기재의 해병대 기질도 몸에 밴 향기로운 사람이다.

 

/김양일(수필가·전 경북매일신문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