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철의 건축이야기] 쐐기

없어선 안될 꼭 필요한 물건

우리 사람의 몸에는 수분이 약 6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풀도 그렇고 나무도 그렇다. 거의 모든 생명체는 그렇게 많은 부분을 사실상 물에 의지하고 있다. 수(水), 화(火), 목(木), 금(金), 토(土)라고 하는 오행(五行)중에서도 아마 물이 더 중요한 생명의 선행요소라서 그런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러한 물이 건축에서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물이 없이는 건축을 할 수도 없지만, 또 반대로 물이 하자의 원인으로 돌변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건축물에 덧대고 포개고 또 잘 짜 맞춰지도록 흙이나 목재를 주요소재로 설계하는 생태건축의 경우, 그 정도는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대부분의 자연소재들은 콘크리트나 플라스틱처럼 습도변화에 초연한 것이 아니라, 대기 중의 수분함유량에 따라서 쉴 새 없이 신축팽창을 거듭하게 되어있다. 어떻게 보면 재료가 ‘숨을 쉬고 있는 증거’ 라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갈라지고 벌어지고 뒤틀어져 있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되면 그게 그렇게 간단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한옥에 살다보면 이러한 상황들을 자주 직면하게 되는데, 봄 가을의 건조한 날에는 목재의 이음맞춤부분에서 저절로 틈이 벌어지게 되고, 그래서 걸어 다닐 때마다 마룻장이 삐거덕거리는 소리도 종종 듣게 된다. 또 고온다습한 장마철엔 반대로 문틈이 뻑뻑해지고 잘 여닫혀지지가 않아서 애를 먹기도 한다. 흙이나 목재가 대기 중의 습기를 빨아들이고 내뿜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걸 그냥 보고만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우리 한옥에서는 그 틈을 보완하기 위해서 옛날부터 쐐기를 박아왔다. 비록 쓰다 남은 허드레 목재로 뾰족하게 깎아서 만든, 정말 작고 볼품없는 물건이지만 그 효과는 상당했다. 조금 벌어지고 뒤틀어진 부분에 쐐기를 꽂고 적당하게 두들겨 박아놓으면, 마룻장이 이리저리 놀지도 않고 삐거덕거리던 소리마저도 슬며시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리 준비한 것은 아니지만 그 자리에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물건을 우리는 쐐기라고 한다.

 

지금은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그래서 각 후보마다 이 지역사회에 꼭 필요한 동량(棟樑)이 되겠노라고 역설하는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기둥과 대들보가 그렇게 많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작고 단단한 쐐기가 더 필요할 시대인지도 모른다. 기둥과 대들보에 나있는 그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서 건축물 전체를 빈틈없이 안정되게 하고, 때로는 삐거덕거리는 소리까지 몰아내던 그런 ‘야무진 쐐기’가 필요한 것이다.

 

/삼호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