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싱그러운 6월에... - 이한교

이한교(한국폴리텍V 김제대학 교수)

4년 전 6월 월드컵을 생각하면 지금도 에너지가 솟구쳐, 환희와 꿈 그리고 희망이 꿈틀거린다. 그때 온 국민은 좋아 껑충껑충 뛰었다.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대한민국”을 외치는 소리에 지축까지 흔들렸다. 주체할 수 없는 기쁨으로 낯선 사람에게 포옹 했어도 어느 한 사람 마다지 않았다. 하늘을 향해 미친 듯 닫힌 가슴을 열었다. 똥개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였다. 기쁨에 엉엉 울기도 했다. 숨이 넘어가는 줄도 모르고 악을 섰다. 무엇이든 나눠줬고 심지어 욕설을 퍼부어도 모두 붉은 악마가 되어 모든 것을 선으로 받아들였다. 누구랄 것 없이 어우러져 목이 터져라 온몸을 던져 응원했던 모습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었다.

 

이처럼 월드컵은 대립과 갈 등속에 침체되어 있는 국민을 하나로 만들었으며, 무엇인가 달라질 거라는 희망을 품었었다. 마치 월드컵이 새로운 시대를 열러 갈 명줄로 알고 국민은 기다리고 있었는데, 코만 드렁드렁 골던 정치판이 4년 만에 눈곱도 때지 않고 부스스 잠을 깨니 뻔뻔스럽다. 4년 이란 긴 시간을 주었는데도 거듭나지 못하고 변죽만 치더니, 비단결 같은 말을 앞세워 이른 아침부터 요란 떨며 골목을 누비더니, 염치도 없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당선을 목표로 뛰더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 너무 조용하다. 4년 뒤에 찾아올 손님들인가. 허울을 뒤집어쓰고 지나치게 자신감을 떨던 그들, 구걸하듯 한 표를 달라 겸손을 떨던 사람들, 능숙한 언어로 책 제목만 보고 전부를 정독한 것처럼 말하는 이야기꾼들, 소낙비가 와서 온 세상이 후 질러져도 허울이라는 좋은 화장발로 능청을 부리던 사람들, 국가의 경쟁력이 9단계나 하락했다는데도 무조건 남의 탓으로만 돌리고, 외국펀드 회사에 전북의 1년 예산의 1.2배를 날치기당하는 판에도 서로의 잘못으로 돌리는 이들은, 정치를 머리로 하려는 잔 머리꾼인가. 이러고도 믿어 달라 말하는 그들은 누구인가. 벌써 시작도 안 했는데 4년 후를 얘기하는 그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이제 선거는 끝났다. 길은 텅 비어 쓸쓸하다. 자중할 때이다. 말로만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인다 말하지 말고, 제발 국민을 우롱하지 말고, 끝가지 추락하여 다시 복구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 전, 뼈를 깎는 심정으로 약속을 지켜야 할 것이다. 또한, 누가 당선되면 어떠랴 어차피 자신의 영달을 위해 힘쓸 거라 믿고 있는 국민을 불러들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도깨비 전쟁 같은 선거제도를 바꿔야 할 것이다. 지금 같은 선거판에서 누가 진짜 연주를 잘하는지 알 수 없지 않은가. 이런 식으로 선거를 치를 바에야 차라리 몸무게를 달아 선출하던지, 아니면 정치학교를 만들어 수능시험을 보듯 평가하여 결정하던지, 아니면 가장 쉽게 선착순으로 뽑아야 할 것이다.

 

염려했던 싹쓸이가 현실이 된 정치판, 염증은 치유되지 못해 더욱 깊어지고, 싱그러운 2006년 6월까지 반목의 정치판으로 멍들어가는 것을 그대로 지켜볼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 모두 정신을 차리자. 미래를 위해 당선자를 격려하고 꼼꼼히 지켜봐야 할 것이다. 또다시 4년 후에 남의 탓이라 말한다면 용서하지 말고, 그때도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로 나라 사랑 전북사랑 외치며 한 표를 구걸하면, 정말 쪽 바가지를 차게 하자.

 

6월이다. 월드컵이다. 지든 이기든 하나가 되어 순수한 마음으로 “대한민국” 6월의 함성을 다시 질러보자. 그리고 부질없이 학연, 혈연, 지연, 남녀노소, 따지지 말고 더 늦기 전, 진정 나라와 전북을 위해 누가 잘하는지, 누가 가슴으로 느끼며 말하고 실천하는 이순신인지, 누가 대립과 갈등으로 나눠진 국민을 하나로 만들어 가는지 지켜보자.

 

/이한교(한국폴리텍V 김제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