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월드컵은 대립과 갈 등속에 침체되어 있는 국민을 하나로 만들었으며, 무엇인가 달라질 거라는 희망을 품었었다. 마치 월드컵이 새로운 시대를 열러 갈 명줄로 알고 국민은 기다리고 있었는데, 코만 드렁드렁 골던 정치판이 4년 만에 눈곱도 때지 않고 부스스 잠을 깨니 뻔뻔스럽다. 4년 이란 긴 시간을 주었는데도 거듭나지 못하고 변죽만 치더니, 비단결 같은 말을 앞세워 이른 아침부터 요란 떨며 골목을 누비더니, 염치도 없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당선을 목표로 뛰더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 너무 조용하다. 4년 뒤에 찾아올 손님들인가. 허울을 뒤집어쓰고 지나치게 자신감을 떨던 그들, 구걸하듯 한 표를 달라 겸손을 떨던 사람들, 능숙한 언어로 책 제목만 보고 전부를 정독한 것처럼 말하는 이야기꾼들, 소낙비가 와서 온 세상이 후 질러져도 허울이라는 좋은 화장발로 능청을 부리던 사람들, 국가의 경쟁력이 9단계나 하락했다는데도 무조건 남의 탓으로만 돌리고, 외국펀드 회사에 전북의 1년 예산의 1.2배를 날치기당하는 판에도 서로의 잘못으로 돌리는 이들은, 정치를 머리로 하려는 잔 머리꾼인가. 이러고도 믿어 달라 말하는 그들은 누구인가. 벌써 시작도 안 했는데 4년 후를 얘기하는 그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이제 선거는 끝났다. 길은 텅 비어 쓸쓸하다. 자중할 때이다. 말로만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인다 말하지 말고, 제발 국민을 우롱하지 말고, 끝가지 추락하여 다시 복구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 전, 뼈를 깎는 심정으로 약속을 지켜야 할 것이다. 또한, 누가 당선되면 어떠랴 어차피 자신의 영달을 위해 힘쓸 거라 믿고 있는 국민을 불러들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도깨비 전쟁 같은 선거제도를 바꿔야 할 것이다. 지금 같은 선거판에서 누가 진짜 연주를 잘하는지 알 수 없지 않은가. 이런 식으로 선거를 치를 바에야 차라리 몸무게를 달아 선출하던지, 아니면 정치학교를 만들어 수능시험을 보듯 평가하여 결정하던지, 아니면 가장 쉽게 선착순으로 뽑아야 할 것이다.
염려했던 싹쓸이가 현실이 된 정치판, 염증은 치유되지 못해 더욱 깊어지고, 싱그러운 2006년 6월까지 반목의 정치판으로 멍들어가는 것을 그대로 지켜볼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 모두 정신을 차리자. 미래를 위해 당선자를 격려하고 꼼꼼히 지켜봐야 할 것이다. 또다시 4년 후에 남의 탓이라 말한다면 용서하지 말고, 그때도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로 나라 사랑 전북사랑 외치며 한 표를 구걸하면, 정말 쪽 바가지를 차게 하자.
6월이다. 월드컵이다. 지든 이기든 하나가 되어 순수한 마음으로 “대한민국” 6월의 함성을 다시 질러보자. 그리고 부질없이 학연, 혈연, 지연, 남녀노소, 따지지 말고 더 늦기 전, 진정 나라와 전북을 위해 누가 잘하는지, 누가 가슴으로 느끼며 말하고 실천하는 이순신인지, 누가 대립과 갈등으로 나눠진 국민을 하나로 만들어 가는지 지켜보자.
/이한교(한국폴리텍V 김제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