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에서는 패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세우기가 한창이지만 한가지 쉬쉬하고 있는 게 있다. 바로 매달 당비 2천원 이상을 내고 1년에 1회 연수를 받은 당원이 당내 선거권과 피선거권, 당직 소환권을 갖는 기간당원제도다.
당내 개혁파가 유럽식 기간당원제를 본따 만든 이 제도는 한마디로 한국의 정치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지방선거에서 확인됐다.
예컨데 우리당 후보(전략공천 제외)를 뽑았던 기간당원 태반이 이미 입지자들이 경선 전에 ‘공’(돈과 조직)을 들여 모집한 당원들이었음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다시 말해 기간당원은 입지자들의 ‘사조직’이자 ‘경선 용병’이라는 이야기다.
지방선거 경선 시작 전 정치권의 한 인사와 기간당원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선거 후 기간당원이 몇명이 남을 것인지를 예상해달라고 했다. “많아야 1∼2% 남겠지”가 돌아온 답이었다. 기간당원제는 이미 예견된 부작용을 안고 출발했다는 반증이다.
선거가 끝나고 우리당의 기간당원이 줄고있다는 보도가 딱 한번 있었지만 그 뒤 감소하는 추세나 전망에 관한 자료는 볼 수가 없다. 당에서 일부러 내놓지 않는지, 선거 참패로 정신이 없어 그러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감춘다고 해결 될 일은 아닐 성 싶다.
그 배경에는 당내 개혁파의 기간당원제에 대한 ‘교조적 애착’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은 기간당원제가 당의 정체성을 대변한다고 신앙처럼 믿고있다. 지방선거 전에 여러 문제점이 도출되고 부작용이 거론됐을 때 개혁파들은 “한번도 시행하지 않았는데 무슨 소리냐”고 밀어부쳤다. 그 뒤 진흙탕 경선이 이어졌고 기간당원 모집에 따른 문제점도 사방에서 터져나왔다. 편법 당원모집, 불법 당비대납, 경선장 동원, 입지자간 합종연횡, 기간당원 밀어주기 등등. 그런 뒤 개혁파는 애써 침묵했다.
이와는 별도로 우리당의 경선과정에서 기간당원 표심은 반영됐겠지만 진짜 민심을 담아내지 못한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유권자들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길게는 2년 전부터, 짧게는 1년 가까이 기간당원을 모집하는 ‘작업’을 거쳐 출마한 후보 상당수를 외면했다. 당 밖에서도 기간당원제 실패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하겠다.
또 기간당원제는 정치신인들에게 넘을 수 없는 거대장벽이었다. ‘꿈’은 있어도 인지도와 조직, 돈이 없는 신예들은 들러리였고 추풍낙엽이 되었다. 결국 기간당원제는 신인들의 진입을 원천봉쇄, 새로운 정치기득권층을 만든 악법이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다음선거를 위해 기존 기간당원을 유지하고 증원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경선 패자보다 본선 승자 진영에서 노골화되는 그같은 현상은 지방자치를 벼랑으로 몰고 갈 우려를 낳고 있다. 왜냐면 이제 전시행정에 이어 ‘용병행정’이 판을 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당내 민주화와 공천 혁명, 당원 중심의 정당 운영’ 기치를 내건 기간당원제는 좋은 점이 많다. 단 ‘기간당원은 자발적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절대 전제가 있을 때 가능하다. 따라서 자발성을 잃은 채 돈과 조직으로 ‘타의적 당원’을 만들 수 있는 기간당원제는 대의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있어 ‘독이 든 사과’에 다름 아니다.
다행인지 우연인지 최근 우리당내에서 기간당원 재검토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개혁파 모임인 ‘참정연’ 소속 김형주 의원은 “기간당원제가 돈 놓고 돈 먹는 식이 됐다”고 화두를 던졌다.
‘그들만의 리그’가 된 기간당원제, 이쯤해서 정리할 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