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에 가득했던 구호와 환희도 사라지고 곳곳마다 펄럭이던 무수한 얼굴들의 미소 띤 현수막도 걷어졌다. 모두가 무상한 듯이 보이는 일상으로 되돌아갔다. 일상의 무게와 삶의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올 즈음 태극전사들의 골문을 가르는 역전승은 우리의 심장을 달군다. 남모르는 이웃들에게 미소 짓게 하고 공통의 화제로 벽을 헐고 나누는 기쁨을 준다. 밤마다 축구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축제는 우리에게 필요하다. 축제는 우리의 일상 속에 어둠을 가르고 빛처럼 꽂히는 환희다. 환희는 새로운 꿈을 품게 하고 그 꿈을 이루게 하는 고된 훈련의 인고에 가치와 당위를 부여한다. 태극전사의 90분간의 치열한 투혼에서 그들의 치열한 일상을 짐작케 한다.
또 하나의 축제의 장이 열리고 있다 한반도의 남쪽 광주에서 6.15 공동선언 6돌을 기념하는 민족통일 대축전이다.14일 밤 그칠 줄 모르고 쏟아지는 비속에서 해외. 북. 남. 측 대표단들은 쉼 없이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받으며 민족축전 개막을 알렸다. 올해 6.15 행사는 어느 때 보다 더 여러 모양으로 6.15정신이 위협받는 정세 속에서 열리고 있다. 미국의 대북 압박 정책이 9.19 공동 성명의 이행을 지연시키면서 우리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여러 시비꺼리를 만들어 국민들을 맥 빠지게 하고 있다. 해외, 남과 북 동포들이 한자리에 모여 쉼 없이 내리는 빗방울을 보며 생각한다. “ 빗방울처럼 혼자였다 ” 가 이리 만나 흐르는 구나 개울을 이루고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겠구나. 진실로 꿈속에서도 바라는 것은 우리 민족의 통일도 축구처럼 전체 국민이 열망하는 축제의 과정이 됐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어젯밤 그 폭우에 온몸을 적시며 통일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우리 민족이 하나 되는 것을 방해하는 힘들이 많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거 같았다.
월드컵의 열기 속에 우리 한반도의 미래 운명을 가름하는 주요현안들이 묻히고 있다. 한미 무역협정의 내용을 면밀히 들어다 보면 그 협정의 결과를 통해 우리 일상의 미칠 자명한 사실들을 묵과 하고 있다. 평택 대추리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우리 일상의 평화가 어떻게 위협을 받을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창이다. 5.31 지방선거 이후 정부의 정책이 흔들리고 있다. 그동안 지원해왔던 대북지원 사업예산을 주도했던 정부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도 들린다. 통일은 전 국민의 동의와 합의 과정을 거쳐 창출해가는 과정이여야 되기도 하지만 또한 대중의 주장이 다 옳고 바른 건 아니다. 때로는 정부가 바른 정보를 주고 일관성 있는 방향과 정책을 명백히 알리고 설득하기도 해야 한다.
6.15 공동선언 이 후 평양과 서울에서 치룬 2005년 6월과 8월의 대축전, 그리고 이여 6자 회담에 일차적 타결을 이루어 낸 9월의 성과는 우리 민족의 저력이다. 금번 민족 통일대축전을 통해 다시 한번 우리 민족의 민족적 자산을 활성화 시키는 역사적 책무를 잘 감당해 나가야 할 때다. 광주의 5월에서 6월로의 의미는 우리의 5월을 현대사적 속에서 지역을 넘어 우리 한반도를 지향하는 것이고 우리 한반도를 넘어 세계를 지향한다. 그 내용은 민족통일을 통한 한반도의 생명평화와 세계의 생명평화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오래참고 견디며 바라며 믿으며.
/김은경(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