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역시 사람이 만든 것이고, 또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사람이 법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법이 사람을 위해 있다. 그러기에 법은 냉철한 논리일 뿐만 아니라 사람의 따스한 온기를 간직한 것이어야 한다. 사회적 힘을 가진 강자에게는 준엄하고 약자에게는 따뜻한 것이어야 한다.
안마사의 자격을 맹인에게만 한정한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두고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맹인들은 한강에 투신하면서 시위하고, 사법감시운동을 하는 단체에서도 어떠한 논평을 내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필자는 이 결정은 법논리적으로는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을 살고 있는 사람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너무나 차가운, 그래서 인권보장에 기여하지 못하는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인권이야말로 제대로 된 인권보장이라 믿는다. 하지만 헌재의 결정에서는 한기마저 느껴진다.
제한된 수의 법조인만이 누리는 특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많은 제도에 대해서는 위헌이라 하지도 못하면서, 사회적 힘이 보잘 것 없다 하여 그리도 쉽게 위헌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렇게 온갖 이론 다 들이대며 현실의 특권을 유지하려 논리를 펼치던 이들이 그렇게 쉽고 단순한 논리로 직업선택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결정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자기 이익에 관련되는 것에는 철저하고 다른 사람의 이익 특히 결정에 대한 반발이 무섭지 않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서는 준엄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 결정으로 사실상 생계가 막막하기 그지없을 이들의 심정과 생활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고려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 쉽게 위헌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 이 결정에서는 차가운 논리만 있을 뿐 가슴이 따뜻한 재판관의 고민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단순명쾌’한 논리로 위헌이라 판단하기보다는 그러한 논리전개가 가져올 맹인들의 삶의 막막함과 고통을 고려하여 새로운 제도 시행에 필요한 충분한 시간을 고려할 수는 없었을까? 논리만으로는 위헌이라 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위헌결정이 맹인들의 삶에 비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헌법불합치나 ‘아직은 합헌’이라는 내용의 결정이라도 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법은 잘 포장된 폭력이다. 그렇기에 사회적 약자와 관련될 때 법은 자칫 법해석이라는 이름으로 약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법은 인간의 온기를 보듬는 것이어야 한다. 인권은 따뜻한 것이다. 인간을 아프게 하고 오로지 냉철한 논리만을 관철시키는 법은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 사람을 죽이는 법이 폭력이다. 그렇기에 법을 다루는 이들은 인간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고뇌를 하여야 하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