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어느 건축물을 보면 우리는 그 지역을 용이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의 전통주택을 보면, 우리나라 한반도 내에서도 북쪽의 함경도· 평안도· 중부의 경기도· 남부의 전라도, 울릉도· 제주도 등에 이르기까지 그 지역의 고유한 전형적인 형식이 있었다.
가장 큰 특징을 살펴보면, 평면상에서 남쪽 지역으로 갈수록 바닥 면적에 대한 마루의 면적비율이 크다는 점이다.
함경도 지역의 전통주택은 춥고 긴 겨울에 적응하기 위해 마루가 없고 부엌 공간을 거실과 같은 공간으로 확대한 ‘정지’가 있으며, 방들이 서로 붙어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지역 특성에 따른 분명한 지역건축이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현대에는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 건축의 기술과 정보의 발달, 생활의 보편화에 의하여 건축의 지역적 특성이 희미해지면서 건축물을 보고도 그것이 있는 국가 또는 지역을 짐작하기는 매우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다. 세계의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현대건축은 모두 비슷한 양식과 분위기를 보이게 되었다. 예컨대, 호주의 시드니의 도심과 우리나라 서울 여의도의 원경사진은 거의 차이가 없게 느껴진다.
한편 이 두 도시의 원경사진을 다시 자세히 살펴보면 차이가 나는 건축물이 눈에 뜨인다. 조개껍질을 겹쳐서 세워 놓은 듯한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핀란드 건축가 요른 유쫀 설계)이다. 이 건물의 건축적 우수성은 독특한 형태구성과 구조적 아름다움에만 있지 않다. 건물은 시드니 시에서 바다로 연장된 매립된 대지에 위치하고 있다. 육지에서 바다로, 바다에서 육지로 향하는 장소적 힘을 강하게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오페라 하우스는 이 장소에서만 가장 큰 건축적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지역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이 건축물은 현대 건축이지만 누구나 인정하는 시드니의 지역건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우리에게 새로운 현대적 지역건축의 가능성을 새롭게 제안하고 있다.
최근 전북의 어느 군에 공공 화장실을 설계할 기회가 있었다. 새로 개발된 해안 계획도시에 있는 60평 규모의 작은 화장실이다. 설계 컨셉은 이 건축물이 산과 바다를 이어주는 회랑(gallery)으로서의 형태와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두 개의 섬과 같은 건물 덩어리들 사이에 유리 박스를 두고 이 박스의 지붕은 한옥의 용마루 선 두 개가 교차되는 형태를 갖고 있다. 밤에는 유리박스 내부의 조명으로 인하여 육지에 있는 또 하나의 등대가 된다. 장소적 속성이 진하게 배어있는 지역건축은 그 지역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여겨진다.
이제 지역건축은 장소성이 없는, 기존의 비슷비슷한 형태의 현대건축에서 벗어나 그 지역의 고유성을 표현하기 위해 장소적 이야기를 엮어내야 한다. 전북지역은 매우 오랜 역사와 독특한 문화적 배경에서 나오는 지역의 장소적 힘을 건축에 실어야할 것이다. 전북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지역건축의 힘을 기대해 본다.
/전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