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백의 一日五話] 6·25...인민군 대전에 침입

《7월 19일》

 

①인민군 대전에 침입

 

1950년 6·25 한국전쟁 초반 가위 파죽지세로 남하해 온 북한 인민군은 7월 19일, 대전에 침입했다. 거의 무저항 상태에서 들어온 것이다. 이때 미 육군 24사단은 싸움 한번 해보지 못하고 파멸되었으며, 사단장 딘 소장은 실종되었다. 며칠 후 그는 전북 진안에서 포로가 되었다.

 

②이승만·여운영의 기일

 

1965년 오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4·19 후 다시 하와이에 망명 중, 조국을 그리며 90세로 눈을 감았다. 한편 정치가 여운형이 1947년 오늘 서울 혜화동 로타리에서 백주에 한지근에게 저격을 당해 세상을 떠났다. 송진우에 이어 세 번째. 범인 한은 이북에서 내려온 피난민.

 

③로마 빈민촌에 큰불

 

서력 64년의 오늘, 로마의 원형 대경기장 주변의 빈민촌에서 큰 화재가 일어나 연기가 하늘을 덮었다. 이에 놀란 시민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었지만 몽땅 불타버렸다. 이 화재에 황제 네로는 별장에서 달려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이 화재는 그의 소행이란 설도 있었다.

 

④보불전쟁 발발

 

이스파니아의 왕위계승 문제로 1870년 오늘, 프러시아와 프링스 간에 전쟁이 일어났다. 이를 보블(독·불) 전쟁이라고 한다. 당시 비스마르크의 정략과 몰트제의 전략에 의해 그 이듬해 독일이 크게 이겼다. 이 패전으로 프랑스는 50억 프랑의 전쟁 배상금을 지불했다.

 

⑤최초의 ‘구혼광고’

 

1695년 7월 19일, 영국 런던의 한 신문에 다음과 같은 광고가 났었다. “본인 연령 30세, 자산가, 3천 폰드 정도의 재산을 가진 젊은 숙녀를 반려자로 삼고자 함”이란 내용이었다. 이는 세계 최초의 ‘구혼광고’이다. 그 후로 ‘연인 모집 중’ 또는 ‘결혼상대 희망’등 광고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