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고스톱' 비가(悲歌)

무엇이 시나브로 고스톱 열풍을 잠재웠는지 모르겠으나 산업사회가 한창이던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우리는 '고스톱을 모르면 간첩'이라 할만큼 고스톱 문화에 푹 빠져 살았다. 음식점이든 야유회 자리든 사람 셋만 모이면 고스톱판이요, 여관이나 가정집 심지어 사무실에서까지 시도때도 없이 '고' '스톱' 소리가 울려퍼졌으니, 미상불 '고스톱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만도 했다.

 

그렇다고 고스톱을 꼭 사행성 놀음 정도의 저급한 놀이 문화로 몰아붙여야 하는가. 아니다. 도박으로만 발전하지 않는다면 그만한 오락도 흔치가 않다. 한손으로 화투짝을 움켜쥐고 보일듯 말듯 살짝 쪼여 보는 박진감에다 남이 싸놓은 패 쓸어먹고 쓰리고를 부르는 맛이란... 어느 오락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도박과 오락은 백지장 한장 차이로 경계선을 넘나든다지만 '본전 생각이 나면 도박'이고 '그저 재밌게 잘놀았다고 생각하면 오락'이라지 않던가.

 

고스톱을 치다보면 엉뚱하게 인생살이에 참고가 될만한 교훈을 얻게 되는 수도 있다. 순간의 실수가 큰 결과를 초래한다는 '낙장불입' 사소한 것도 소홀히 하면 안된다는 '피바가지' 무모한 모험은 금물이라는 '독바가지' 현명한 판단력이 있어야 살아남는다는 '쇼당' 등등.. 금과옥조와 같은 교훈이 넘쳐나다. 또 '2등은 소용없다' '열받으면 진다' '강적은 피하는게 상책' '자리 탓 하지 마라'와 같은 고스톱 손자병법 21가지도 새겨들을 만하다.

 

뿐만 아니다. 고스톱은 정치인과 사회현상을 신랄하게 풍자하여 서민들을 대리만족시켜주는 묘미도 있다. 싹쓸이를 하면 상대방 패를 아무 것이나 가져오는 '전두환 고스톱'에 5 2 8 열끗을 먹으면 져도 돈을 내지 않는 '오리발 고스톱'까지 별별 규칙을 다 만들어 고스톱을 한 차원 높은 놀이문화로 즐기고 있는 것이다.

 

엊그제 전주지법에서 점당 백원짜리 고스톱을 친 농민이 7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그는 도박전과가 없는 초범이었다. 법이 준엄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판결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몇 억원씩 판돈을 걸고 내기골프를 친 통 큰 부자들에게는 도박인가 아닌가를 놓고 고민하면서 단돈 백원짜리 오락사범(?)에게는 추상 같은 법의 잣대를 들이대다니 죽은 공자님도 벌떡 일어날 일이다. 요즘 백원짜리 동전은 유치원생도 줍지 않는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