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길은 사람의 창작품이다. 누가 언제부터 처음 다니기 시작했는지 그건 모르지만, 발걸음이 잦아지다보면 그게 저절로 길이 된다. 그래서 그런지 옛날 길은 산과 물을 닮아 그 형태부터 아주 자연스럽다. 구불구불 휘돌아가기도 하고, 오르락내리락 요동치는 모습이 흡사 자연의 일부 같다.
그런데 그 길을 다니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서부터 길도 몸살을 앓기 시작한다. 강제로 파헤쳐지기도 하고, 자갈이 깔리기도 하다가, 어떤 때는 온통 시멘트로 뒤덮여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다시 깔끔하게 아스팔트로 포장되기도 하는데, 그러면서 길은 점차 사람보다는 자동차 위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원래 길은 물을 따라 나게 된다. 물은 더 낮은 장소를 찾아 이동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으므로, 물길을 따라 걷는 게 가장 쉽고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날 길은 거의 다 그렇게 물길을 따라 다소곳이 나 있었던 것이다. 물이 서로 만나면 길이 만나게 되고, 그 길이 만나는 곳에서 자연스럽게 사람들도 서로 만나게 된다. 그게 순리였다.
그런데 지금 우리 현대사회에서는 그런 고즈넉한 길만 따라다닐 수 없게 되었다. 유통과 효율이 우선이었다. 앞을 가로막는 산은 깎아내고, 물을 만나면 그 위에 서슴없이 다리를 놓았다. 이렇게 사통팔달의 도로를 만들다보니, 이젠 사람들도 옛날 「풍수지리」나 「택리지」에서 거론하는 명당을 굳이 찾으려고 하지 않게 되었다. 아니, 오히려 깊은 계곡이나 넓은 하천 근처가 더 좋은 집터로 각광받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물길이 따로 있었고, 바람길이 따로 있었으며, 집터가 따로 있었던 것이다. 그걸 무시하고 지금처럼 물길과 바람길을 건드려 놓은 대가는 실로 엄청났다. 어느 임계점까지는 그저 모른 척하며 돌아다니던 그 물과 바람이 세력을 규합하자마자, 때리고 부수고 무너뜨리며 달려든 결과는 참으로 가혹했다. 이번 장마가 그랬고 저번 태풍이 그랬다. 피해는 안타까웠지만, 물과 바람은 다시 한 번 우리에게 그 「길」을 가르쳐 준 것 같다.
/ 삼호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