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당시 세상사람들에게서 도덕적으로 크게 허탈감을 느껴 ‘이거다 그만두어버릴거다’하는 심정에서 말하기를 “나는 도덕을 좋아하기를 여색을 좋아하는 것같이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吾 未見 好德 如好色者也)”라고 했는데 나는 여기서 “덕을 좋아하기를 권력을 좋아하는 것같이 하는 자를 나는 보지 못했다”라고 말한다.
얼마전에 멕시코에서 대선을 치뤘는데 개표결과 이미 대통령을 지낸(incombent) Calderon이 1퍼센트도 채 못되는, 오차범위라고도 하기 어려운 득표차로 상대방 후보 Obrador를 누르고 당선이 되었다 하는데 Obrador은 투개표 과정에서 부정이 있었다 하며 불복하고 법에 제소하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엉뚱한 말을 하게 되는 것은 그것을 타산지석으로 하여 우리나라, 아니 우리 전북 도민의 몇사람이라도 나와 같은 도덕정신을 나누어 갖고 싶은 욕심에서 그러는 바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Calderon 대통령이라면 이미 대통령을 지낸 나의 득표가 그정도이니 이는 나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그런 정도인데 비해 상대방은 새로운 인물로 그만한 표를 얻었으니 그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그만큼 크다할 때 나는 그에게 선선히 양보하고 물러나겠다는 것이다. 사람의 가치라는 것을 어디서 찾는 것인가? 권력을 누리는 자리에서? 아니면 남에게 아량과 덕을 베푸는데서? 만약 Calderon이 그러한 덕인이 되었다면 멕시코 학생이나 주민들에게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가장 값지고 아름다운 도덕교육을 하게 됨은 물론이고 자기는 영원한 국부로 존경을 받을 것이니 그가치가 대통령 한 털 더하는 것에 비할 것이가 말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 Calderon은 천금같은 기회를 놓혀버렸다. 우리에게 보람을 느끼며 살 수 있는 세상, 남이 나를 아껴주고 내가 남을 흐뭇하게 해주는 그런 사회를 만들 수 없을까? “사람이 덕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럼으로 우리가 크고 작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남에게 양보하는 덕을 베풀면 상대방도 나에게 그럴 것이 아닌가? 그것이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 서양말로 미덕을 virtue라 하는데 이는 사내답다는 Latin에서 온 말이다. 사내다운 풍모를 지닌 사람이라면 그는 도덕가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도덕을 행하는 데는 사내다운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자기가 손해보는 용기 그것 말이다.
나는 여기서 대단히 미안하지만 결론삼아 내 스스로 만든 우주적 3가지 강령을 적어볼까 한다. 독자들의 양해를 구하면서, ① 하늘은 땅을 위해 우토를 아끼지 않는 법이요 ② 땅은 사람을 위해 열매를 아끼지 않는 법이요 ③ 사람은 이웃을 위해 인정을 아끼지 않는 법이다. 이렇게 되면 오기 싫어도 지상에 천국이 오고야 말 것이다. 이것만이 인류가 구원받는 방법이다.
/강희남(김제 난산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