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판사자리

불교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효봉 스님은 일제때 판사였다. 와세다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평양에서 법관 생활을 하다가 자신이 내린 사형언도가 오심임이 밝혀지자 산으로 들어가 선승이 되었다. 김제 출신의 김홍섭 판사는 ‘사도(使徒)법관’으로 유명하다.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그는 항상 ‘인간이 인간을 재판할 수 있는가’라는 고민을 품고 재판에 임했다. 또한 그는 사형수의 대부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총애하던 육군 특무대장 김창룡을 살해한 허태영 대령 등 10여명의 사형수를 가톨릭으로 인도해 마음의 평안을 얻도록 했다.

 

이분들의 면모를 보면 판사는 종교인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유무죄를 판단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런 일은 신(神)만이 가능하다. 따라서 판사는 ‘신의 영역’을 다루는, 신에 가장 가까운 인간이어야 할 것이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판사는 종교인 뿐 아니라 심오한 철학자요 역사가요 예언자여야 한다. 그만큼 어려운 자리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와 대조적인 말도 없지 않다. 프랑스에는 ‘선물이 크면 재판관을 장님으로 만든다’는 속담이 있다. 또 러시아에는 ‘하느님에게는 진실을 고하고 재판관에게는 돈을 건네라’는 속담이 있다. 이와 유사한 것으로 우리에게는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있다. 그래서 30년 동안 미국 대심원 판사를 지낸 O.W. 홈스는 이렇게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재판관이란 순진하고 단순한 사람일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도 메피스토펠레스적인 데가 있어야 한다.”

 

요즘 법조비리로 시끄럽다. 판사 15명이 관련된 1997년 의정부 비리와 1999년 대전 법조비리에 이어 대형 법조비리가 또 터졌다. 카펫 수입업자인 브로커와 고법 부장판사 등 전현직 판검사들이 서로 ‘형님 동생’하며 유착해 지내면서 사건을 봐 준 것이다. 당연히 금품과 향응, 접대골프 등이 뒤따랐다. 또 전주지법 군산지원 판사 3명도 건설업자로 부터 비슷한 대접을 받다 이것이 드러나자 사표를 냈다. 이 가운데 2명은 업자가 제공한 57평 아파트에 공짜로 살았다고 한다.

 

때 맞춰 대법원은 평판사 993명의 재산을 실사했다. 변호사협회는 비리가 있는 판검사들의 변호사 등록을 제한할 예정이다. 판사들 마저 믿지 못하는 사회가 두려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