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군 고산면 어우리 삼우초등학교에는 ‘순우리말 수업지도’를 고집하는 교사가 있다. 이 학교 4학년 담임인 염시열 교사(55)가 주인공이다. 염 교사가 가르치는 4학년 교실 칠판 왼편에는 ‘벼름소’와 ‘마당’이란 단어가 적혀있다. 벼름소는 ‘주제’, 마당은 ‘단원’을 가르키는 순우리말이다. 아마도 염 교사가 수업시간에 “오늘 벼름소는 무엇, 마당은 어느 쪽”이라고 아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적는 공간인 듯 싶었다.
“얘들아 배움맞이 하자. 자 이제 새물내기 시간이다. 갈나눔 해볼까…” 염 교사가 진행하는 수업 모습이다. 배움맞이는 공부(수업)를 시작한다는 말이며, 새물내기는 글쓰기 시간, 갈나눔은 배운 것을 얘기해보는 토론시간을 말하는 순우리말이다.
‘수업시간에 순우리말을 사용하면 아이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는 없느냐’는 질문에 염 교사는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언어에 대한 기득권이 없어 국어와 영어와 한문 등 몇 개 국어를 함께 가르쳐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염 교사가 순우리말 수업지도를 처음 시작한 것은 교직생활 10년째 되던 해인 지난 1985년. “3·1절 기념식에서 낭독되는 독립선언문을 들으면서 왜 우리나라 교사용 지도서는 일본식인가”에 대한 의문을 품게된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일본식 수업안으로 어떻게 아이들에게 한국 정신을 가르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진 염 교사는 훈민정음의 구조를 이용해 직접 만든 3가지 국어과 교사용 지도서로 지난 99년부터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2001년에는 한글학회 학술대회에서 ‘훈민정음으로 수업안 짜기’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정확한 뜻을 모르면서 일본식 한자를 사용해서는 안된다”면서 “예를 들어 ‘움직씨’로 쓰면 될 것을 ‘동사(動詞)’라고 쓰면 학생들은 얼어 죽는 ‘동사(凍死)’인지, 구리철사 ‘동사(銅絲)’인지 알 수가 없다. 물론 동사로 써도 20% 정도의 아이는 알아듣지만 80%는 포기한다. 교육이 20%만 위하고 80%는 포기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염 교사는 “우리말 ‘있다’ ‘없다’로 쓰면 되는 것을 한자인 ‘존재 유무’로 쓰면 할아버지·할머니가 알아듣지 못할 수 있다”면서 “말은 세대간 의사소통이 가능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염 교사의 우리말 수업지도는 삼우초등학교 곳곳에 확산돼 있다. 교장실 칠판에는 ‘두레’가 짜여있고, 교무실 칠판도 ‘학년 뜸, 맡은 님’ 등 순우리말로 적혀있다. 그러나 “우리말 사용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공문에 까지 우리말을 사용해 다른 사람들이 못 알아보는 경우가 있어 난감할 때가 있다”는 교감 선생님의 하소연도 있다.
전교조 참교육연구소 민족교육분과장을 맡고 있고 군산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지금도 우리말을 공부하고 있는 염 교사는 “기득권에 얽매이고 편리성만을 쫓다보면 소중한 우리 말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을 더 많은 선생님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