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5일장의 소고

국민의 8할이 농촌에 뿌리박고 살던 시절, 온 동네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부산을 떠는 날이면 보나마나 5일장날이다. 곱게 다려 입은 두루마기에 단정하게 갓을 맨 할아버지, 시장에 내다 팔 오만가지 농축산물을 바리바리 이고지고 집을 나서는 아저씨 아주머니, 시장에 가면 모처럼 실컷 먹고 별별 구경 다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벌써 저만치 앞서가는 아이들까지 그날은 모두 괜스레 기분이 들뜨는 날이었다. 당시 5일장날은 바로 우리 민족의 지역축제마당이었던 것이다.

 

그랬다, 시장에 가면 저절로 기분이 좋았다. 곡물전에 어물전은 기본이고, 가축전 옹기전에 철물전 비단전까지 비행기와 잠수함만 빼고 있을 것은 죄다 있었으니 보는 것만으로도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뿐인가. 쇠전 옆 공터 가마솥에서는 돼지머리와 내장이 부글부글 끓고, 잡화전 앞 간이식당 양은솥에서는 국수 삶는 냄새가 구수한데 이것이 볼거리와 먹거리가 완벽하게 어우러진 한마당 축제판이 아니고 무엇이었겠는가.

 

5일장날은 또 민초들이 모여 주제없는 토론을 하는 날이요, 낯선 이웃을 만나 흉허물을 트는 사교의 날이기도 했다. 어떤 이는 자기 자랑으로 침이 마를새가 없고, 어떤 이는 신세 한탄으로 눈물이 마를새가 없다. 그러나 그들을 결코 누구를 부러워하거나 탓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그냥 운명으로 용서 해버린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 냄새 가득한 5일장날의 진솔한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새삼 거론한 필요조차 없거니와, 지금 5일시장이 침체의 도를 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농촌이 거대한 경로당으로 변해가고 돈이라는 돈은 모조리 도시로 빨려 가는데 5일시장이 살아남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게다가 대형할인점들이 속속 들어서 저가 폭탄을 퍼붓는 데다 경기마저 장기침체국면에 빠져 농촌 경제가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는데 무슨 용빼는 재주로 5일시장이 살아남겠는가 말이다.

 

5일시장이 문을 닫는다고 해서 국민들이 크케 불편할 일은 없다. 어찌 보면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5일시장이 쇠퇴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다만 필부들의 꾸밈없는 이야기와 무시로 피어나는 인정까지 함께 보내야 한다는 것이 서운하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