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대학 대학원에 입학하여 응용경제학분야 중에서도 국제경제학을 전공하겠다고 담당교수님(小宮隆太郞)을 찾아가 연구계획을 말씀드린 결과, 대학을 잘못 들어왔다는 것이다. 국제경제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려면 전문대학(2년제)에 들어가라는 것이다. 일본 제1의 대학이 동경대학이라고 생각하여 어렵게 들어갔는데 전문적으로 연구하지 않는다는 말은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159개의 전문대학이 있지만 4년제 일반대학에서 더 전문적인 교육을 요구하고 있다. 동경대학 경제학부에서는 국제경제학이 선택과목이며 그것도 2년에 한번 개설된다는 것이다. 국제무역으로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된(1976년) 일본의 대표적인 대학에서 국제경제학을 선택과목으로 취급하고 있는데 대해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대학은 모름지기 원론과 원칙이 확립된 학문만을 연구하고 인격을 도야하는 곳이며, 2년제 전문대학이야말로 사회에서 내일이라도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지식을 교육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학문의 경지에 도달하지도 못한 각종 이론이나 학설을 전달하는 곳이 대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대학의 4년간 교과과목도 그렇게 많지 않고, 3·4학년에서는 몇몇 학생들이 서클을 만들어 자발적으로 세미나를 통해 관심있는 전문분야를 스스로 하고 있는 정도며, 미국 하바드대학도 큰 차이가 없다. 나는 이를 통해 학문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실은 나 역시 실생활의 경제에 관심이 많아서 경제학을 전공하게 되었는데, 대학에서 공부하다보니까 경제에 대한 것이 아니라, 경제학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되어 경제와는 멀어지는 감을 느끼게 되었다. 경제이론은 어느 때부터 생겼으며 그 내용은 무엇이며 그 흐름과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하는 경제학설사로 연결되고, 왜 그런 이론이 나왔는가 하는 문제로서 경제사상이나 경제철학의 경지에 들어가면 실제생활의 경제와는 더욱 유리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박사학위논문 제목을 지도교수와 결정하고 나면 자료수집 하는 과정에서부터 지도교수는 질문과 토론할 때마다 수십 권에 달하는 자신의 책과 다른 자료를 읽어보고 이야기하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고, 수백 권의 책을 가지고 씨름하다보면 결국 경제와는 관계없는 경제학의 공부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흔히 주변에서는 내가 경제학박사가 되었으니까 경제를 잘 알 것이라 생각하여, 경제에 대해서 질문을 하거나 주식가격이 어떻게 될 것이냐고 물어보는데, 항상 나는 경제박사가 아니라 경제학박사라고 변명한다. 다시 말하면 나는 경제를 잘 모르는 경제학박사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랜 공부를 통해 학문이 무엇이며 대학의 사명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대학은 사회발전의 원동력인 지식을 창조하고 교육하고, 인격을 연마하는 상아탑이어야지 검증되지도 않은 세계도처의 지식과 이론을 수집하여, 가공은 고사하고 포장도 뜯지 않고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지식 도매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