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공시족

몇몇 재벌기업이 국가경제를 쥐락펴락하던 시절 공무원은 취업지망생들에게 별로 인기있는 직종이 아니었다. 대학 간판과 실력이 웬만한 학생이라면 으레 고시에 도전을 했지 하위직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을 정도였다. 지금처럼 대학생이 흔치 않은 이유도 있었지만, 그보다 말단 공무원 봉급으로는 살림 꾸리기가 너무 옹색했던 탓이 더 컸다. 공무원 보수가 기업에 비해 얼마나 형편이 없었으면 공무원에게 그렇게 인색하게 굴던 언론들까지도 공무원 월급은 올려줘야 한다고 떠들어댔겠는가.

 

그리 머지않은 과거 어느 때까지 공무원들은 정말로 박봉에 시달렸다. 눈치껏 장난을 쳐 부수입(?)을 올린 공무원들이야 그렇다고 치고, 국가와 국민 앞에 부끄럽지 않은 공직자가 되겠다며 멸사봉공의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은 우직한 공무원들은 살림살이가 여간 고단하지가 않았다. 쥐꼬리만한 봉급으로 쌀 몇 말에 연탄 몇십 장 들여놓고 나면 월급봉투는 금세 바닥이 드러났다. 그래서 어느 한 달 부식값 걱정 않는 달이 없었고, 자식들 교육비며 의료비 걱정은 의당 숙명처럼 달고 살아야 했다. 한마디로 말만 화이트칼라지 기층민 생활을 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공무원이 박봉에 시달린다는 말은 옛날 이야기가 됐다. 지난 2000년에 직원 100명 이상 기업의 88% 수준이던 공무원 급여가 작년엔 93% 수준까지 높아졌다. 또 퇴직 후에도 마지막 3년간 임금 평균의 76%를 평생 연금으로 받을 수가 있어 31년간 근무한 서기관의 경우 매달 220여만원을 손에 쥐게 된다. 은행이자로 치면 원금이 무려 7억원은 돼야 한다. 게다가 도둑놈 심보만 버린다면 대부분 정년이 보장되니, 요즘같이 사오정이니 삼팔선이니 하는 세상에 그만한 직장이 어디 있겠는가.

 

공무원 인기가 하늘을 찌르면서 젊은이들이 온통 공무원 시험준비에 매달리고 있다. 7급이든 9급이든 보통 100대1 안팎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으니 이건 시험이 아니라 거의 로또복권타기 수준이다. 산업구조가 급속히 재편되는 과정에서 안정된 직장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긴데 젊은이들이 공무원 시험준비에 올인한다고 해서 탓할 이유는 없다. 다만 우리 사회에 공시족(公試族)이 넘쳐나다 보면 창조적 에너지가 사장되고, 폐인되는 인재 양산될까 두렵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