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초로의 한 남자가 식탁을 탕탕 치며 “어디 대한민국 땅에서 빽 없는 놈들은 살수가 있나. 저희들끼리 꿍짝꿍짝 박자 맞추어 다 해쳐 먹고…. 속았어 불쌍한 우리들만 속았지…. 장관이니 차관이니 힘 있는 자리란 자리는 다 줄 잘 선 놈들 것이고…. 이제 와서 뭐 말라비틀어진 자주니 민족주의니 하며 전시작통권을 환수한다며 병신 꼴값들 떨며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면서 휴…. 어디 제명에 살 수가 있나…. 이제는 서민들 피까지 빨아 먹으며 저희들 뱃속 채우고 국민들은 바다 속에 빠뜨려 허우적거리게 만들고…. ”
머리가 혼란해질 정도로 지끈거렸다. 애써 소주 탓이려니 마음을 돌리고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재빨리 찾아 숨고 싶은 심정 뿐이었다. 옆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나이 지긋한 한 70대 남자가 맞장구를 치며 “아 이 사람아 열 받지 말고 자네 건강이나 챙겨. 자네가 나라 걱정한다고 국가가 자네 건강 챙겨 줄줄 아나. 다 쓸데없는 이야기야…. 요즘 오죽 했으면 정치하는 놈들은 메뚜기 떼 닮았다고 하지 않나. 메뚜기 떼처럼 철따라 우르르 떼지어 다니며 풀밭에서 논다고 하지 않나…. 정치인치고 믿을 놈 한 놈도 없지. 세간에 이런 말이 있지. 한강에 빠진 사람들 중에서 제일 먼저 정치인을 건져내는 이유는 한강 물이 오염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는 우스갯 소리도 있지 않나….”
올 여름은 긴 장마와 무더위로 국민들의 마음은 유난히 뜨겁기만 했다. 달구어진 국민들의 마음은 꼭 날씨 탓 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동안 여름 내내 열대야와 싸우며 불면증에 시달려야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정치권발 적색뉴스였을 것이다.
“홍수 피해지 한 복판에서 정치인 골프사건, 울산 현대 자동차 19년째 노조파업, 포항 건설노조 포스코 점거농성, 전교조 친북 학습 자료집 사건, 고이즈미 일본 총리 야스쿠니 신사참배, 북한 미사일 발사와 북핵문제, 8?5특사와 사면권 남용문제, 전공노의 을지훈련 폐지주장, 법조비리 사건, 김병준 교육부총리겧?瑛?법무장관겴缺玲?건보이사장겵ㅏЯ?KBS사장겴恍옘?헌법재판소장 등의 인사파동설, 군원로들 마저도 낡은 제복을 꺼내 입고 결사반대 목소리를 외치는 전시 작전통제권 단독행사문제, 대통령 조카의 연루설이 제기된 성인오락실 바다이야기 사건 등등.
여름 밤을 달구며 국민들 가슴속에 깊은 상처를 남겨 준 사안들이다. 세대간 계층간 지역간의 사회적 반목과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통합과 상생의 정치를 펼쳐 깨끗하고 소신 있는 정직한 정치인이 되겠노라고 맹세하던 위정자들은 다 어디로 갔나이까. 도덕과 청렴 정치의 표본이 되어 국제적 경쟁력과 선진화의 기틀을 마련 할 수 있는 비전과 원칙을 제시하던 정치인들은 모두 긴 여름휴가를 떠났나?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이 오죽 했으면 국민들의 입에서 메뚜기 떼와 정치인은 닮았다는 조롱과 비아냥이 회자될까 하는 생각에 부끄러움이 앞선다.
이제 이러한 국민들의 아물지 않은 상처와 한을 돌봐주며 치유해 주어야 할 몫은 노무현정권과 정치권 공동의 몫이다. 더 이상 구태의연한 변명과 치졸한 말장난으로 국민들을 우롱하지 말고 진심으로 사죄하고 선선한 가을밤을 준비하자.
/라경균(법학박사·원광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