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주보기] 저수지의 밤 낚시꾼들 - 장성수

장성수(최명희문학관 관장)

시골의 우리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그리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규모의 저수지가 있다. 이른 아침 잔잔한 수면 위로 피어오르는 물안개, 그 너머로 주위 소나무 숲에 서식하는 백로 떼들이 창공을 가로 질러 날아간다. 겨울이 되면 청둥오리 떼들이 차가운 수면 위를 먹이를 구하느라 부지런히 자맥질하며 떠다닌다. 억새꽃이 겨울 석양을 받아 은빛 비늘처럼 반짝인다. 출퇴근하는 길에 바라보는 그곳의 풍경은 이처럼 한 폭의 산수화가 따로 없을 만큼 아름답고 평화스럽다.

 

작년 여름엔 물난리가 나서 온갖 부유물들이 수면 전체를 가득 메우는 바람에 흉측한 몰골이더니, 올해는 옛날 모습을 되찾았다. 수마가 할퀴고 간 상처를 인위적으로 치료하지도 않았는데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것을 보며 자연의 자기치유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마가 끝나고 올 여름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될 무렵, 이곳에 낚시꾼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였다. 다른 낚시터는 외래종 붕어가 이미 점령해버렸는데 아직 이곳은 토종 참붕어가 잡힌다는 것이 주된 이유라고 했다. 낮에만 낚시꾼들이 모이는 줄 알았더니, 밤늦은 귀가 길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푸르게 빛나는 형광체가 수면 이곳저곳에 보였다. 차를 멈추고 물가에 내려가 보니 밤낚시꾼들이 던져놓은 낚시찌였다. 적막한 어둠 속에서 푸르게 빛나는 한 점 찌만을 응시한 채 수도승처럼 앉아있는 그들을 보며 오래 전에 읽은 강용준의 소설 “초망지비”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하나, 둘 길게 꼬리를 그으며 떨어지는 밤하늘의 별똥들이, 통풍을 위해 걷어 올린 모기장을 통해 시야로 들어오게 된다. 은하수도 들어온다. 은하수 너머 더 먼 우주도 들어온다. 정말이다. 인생관이 바뀌고, 세계관이 바뀌고, 우주관이 바뀐다. 증오감도 사라지고, 조급함도 사라지고, 같잖은 명예욕, 까부는 자식들을 향해 앙다물었던 이의 힘도 스르르 제풀에 풀려나가고, 그렇게 된다. 인간이 살면 얼마나 사는데, 그렇게 된다.’

 

밤낚시 경험이 전혀 없는 나에게는 그들이 정말 그런 깨달음을 얻게 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이 스스로를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 이유가 단지 월척을 낚기 위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서로를 보듬는 언어보다는 상대에게 치명적 상처를 주는 폭력의 언어가 판을 치는 이 번잡스러운 세간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서는 아닐까. 스스로를 글 감옥에 가두는 문인들이나, 텅 빈 캔버스를 앞에 두고 있는 화가, 내면을 다잡고 악상을 떠올리는 음악가, 흰 벽면을 응시하며 화두에 매달리고 있는 수도승과 그들의 모습은 닮아 있는 듯했다. 출세간함으로써 세간에 드는 묘리를 그들은 이미 터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수면을 고요히 응시한 채 돌부처처럼 앉아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평생 수도승처럼 글을 써온 최명희 선생을 떠올렸다. 그녀가 남긴 “어둠은 결코 빛보다 어둡지 않다”는 말의 뜻을 알 것도 같았다.

 

/장성수(최명희문학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