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전공은 눈부셨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그는 23전 23승을 거두었다. 그 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잃은 전선이 2척에 불과했다. 징기즈칸이 20번 전투에 2번, 나폴레옹이 23번 전투에 4번 패한 것과 비할 바 아니다. 그러기에 러일전쟁에서 발틱함대를 수장시킨 일본 연합함대 사령관 도고 헤이하치로는 “세계 해군 역사상 군신(軍神)은 이순신 한 사람 뿐”이라고 했을 것이다.
이같은 이순신의 불패신화는 빠른 정보입수가 한 몫을 했다. 그는 사방팔방으로 정탐꾼을 보내 적의 동태를 감시했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치밀한 작전계획을 세워 연전연승을 거둔 것이다. 전투에서도 전투를 벌이는 전선보다 적을 탐지하는 초탐선을 더 많이 운영했을 정도다.
1990년대 독일이 통일된 뒤 조사과정에서 동독이 서독에 수많은 간첩을 파견했음이 드러나 충격을 줬다. 서독의 정치계는 물론 경제계 학계 노동계 할것 없이 수만명으로 추산되는 첩자들이 정보를 빼내 동독으로 넘겨줬던 것이다. 독일 검찰은 이 가운데 3000여명을 수사해 500명을 기소했다.
또 북한은 해방이후 지금까지 남한에 엄청난 수의 간첩을 들여 보냈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지금까지 검거 또는 자수한 간첩은 4500여명에 이른다. 사살된 무장공비도 1300여명이나 된다. 그러다 1998년 이후에는 간첩 얘기가 뜸해졌다.
그런데 며칠전 국회에서 뜬금없는 간첩 얘기가 나와 한바탕 설전이 오갔다. 통일외교통상위에서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이 이종석 통일부 장관을 ‘세작(細作)’에 견주어 발언을 한 게 발단이었다. 그는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문제를 지적하면서 이 장관이 북한의 세작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세작은 현재 인기리에 방영중인 TV 드라마 ‘주몽’에 가끔 등장한다. 한나라 현토 태수가 부여국 왕실의 동태를 감시하기 위해 세작을 보내는 장면 등이 나온다. 세작은 간첩을 일컫는다. 첩자, 간자(間者), 간인, 세인(細人), 오열(五列), 밀정, 스파이와 같은 말이다. 이는 임진왜란 당시 선조실록에도 종종 비친다.
김 의원의 발언에 대해 한명숙 총리는 ‘인격 모독의 폭언’이라고 비판했다. 통일부 노조는 “장관이 세작이라면 통일부 직원은 간첩 하수인이냐”며 사과를 요구했다. 공격적인 말에도 품위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