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생긴 게 「그렝이질」이라고 하는 전통적인 결구(結構)방식이다. 어떻게 보면 그렝이질은, 기둥이 주춧돌에게 의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원래 기둥은 그렇게 염치없는 존재가 아니었나 보다. 그냥 부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제 몸의 일부를 주춧돌의 형태에 맞게 도려내는 아픔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나오니 주춧돌도 차마 거절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주춧돌 윗면의 형태에 따라 금을 그리고, 그 그려진 금대로 목수가 「기둥밑 부분」을 도려내 놓으니, 자연적으로 주춧돌의 윗면과 기둥뿌리는 마치 찰떡궁합처럼 잘 맞아떨어지게 된다. 이것을 「그렝이질」이라고 한다. 알고 보면 뭐 별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게 그 육중한 기와지붕과 대들보, 도리, 그리고 서까래 등의 주요부재를 흔들림 없이 지탱해주는 비밀이 된다.
그러나 그런 주춧돌도 형태가 모두 제각각이다. 그래서 「그렝이질」하는 과정을 보면, 목수가 일일이 주춧돌의 모양에 따라서 본을 잘 뜨는 게 첫째다. 그리고 그 그려진 본대로 기둥밑 부분을 끌과 칼로서 정성스럽게 파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 기둥 하나도 그 「기둥뿌리」가 똑같은 게 없다. 그래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래야 건축물이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서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우리 세상살이하고 비슷하다. 서로 자라온 환경이나 성격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한 가정을 세워나가는 과정과 너무나 흡사하다. 물론 다른 점도 적지 않다. 기둥과는 달리 우리 사람들은 정말 「하나가 되기 위해서」 그렇게 헌신하지는 않는다. 또 과감하게 제 몸을 도려내지도 못한다. 아니, 제 몸을 도려내기는커녕, 반대로 주춧돌이 반듯하게 다듬어지지 않았다고 책망하기 일쑤다. 심지어 주춧돌을 바꾸어 오라고까지 한다.
이렇게 되면 황당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때로는 양보할 때 양보할 줄 알고, 또 덜어내 줘야 할 때가 되면 조금도 망설임 없이 쉽게 덜어내 버리는 저 무심한 기둥에 그렇게 자꾸만 눈길이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삼호건축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