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텔레비전 사극은 온통 고구려 이야기이다. 고구려 개국의 주인공인 <주몽> , 고구려 말기의 영웅 <연개소문> 에 이어 고구려 이후의 발해 이야기인 <대조영> 까지 모두 한반도를 넘어 만주 일대를 무대로 하고 있다. 중국의 ‘한나라’ ‘당나라’와 맞서 싸우며 만주벌판을 말달리던 호걸들의 이야기는 잠들어 있던 우리의 대륙기질을 부추기며 한반도 아래쪽으로만 향하고 있던 눈길을 저 멀리 잊었던 땅, 북방으로 돌리게 한다. 우리 민족의 영토가 저기인데…. 아쉬움 끝에 마른 입술을 적셔 보지만 드라마가 아닌 현실은 어떤가. 대조영> 연개소문> 주몽>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 발해를 중국의 변방정권으로 규정짓는 역사작업의 한편으로, 백두산 경계를 포함한 현실의 국경 유지를 넘어서 한반도 유사시 동남진할 현실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작성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남북대립의 덫에 치어 ‘단일민족국가의 수립’이라는 근대의 문도 여직 통과하지 못해 버둥거리고 있는 사이에 말이다. 중원을 공략하려던 고구려의 꿈은 변방 소수민족사의 몇 줄에 그치고 말 뿐 우리의 현실적 영토는 한반도를 지켜내기에도 버거운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일부에서는 1909년 9월 일제가 청나라와 불법적으로 맺은 간도협약에 의해 간도의 영유권을 뺏긴 것이기 때문에 이제라도 되찾아야 한다고 한다. 그럴 수 있을까. 간도협약은 법리적인 측면에서 당연히 무효이지만 현실 국제정치의 세력관계를 볼 때 우리가 간도를 ‘되찾는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간도지역은 현재 중국이 ‘실효적으로’지배하고 있을 뿐 아니라 1962년, 64년 조중국경조약을 통해 북한과 중국의 국경지역은 확정된 상태이다. 대한민국 헌법상 북한정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유엔이 인정하는 독립국가인 ‘조선’과 중국이 맺은 국경조약을 원천무효로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중국이 백두산 관할권을 옌벤조선족 자치구에서 지린성 정부로 이전한 것을 보더라도 중국은 한반도 통일 이후의 영유권 분쟁을 미리 대비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남은 수단은 전쟁에 의해 무력으로 되찾는 것일 뿐인데 주몽과 연개소문이 한꺼번에 부활한다고 해도 그 전쟁에는 반대하고 나설 것이다.
결국 아련한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면 우리 민족의 현실 영토는 한반도이다. 물론 장구한 역사에서 장차 중국과 러시아가 어떤 변화를 겪을지 모를 일이고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진리에서 보면 미리 그렇게 움츠러들 일은 아니다. 동북아 정세의 변화에 따라 민족의 고토였던 만주, 요동, 연해주 등 지금의 현실적 경계가 어찌 변화될지 미리 예단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한반도에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의 분쟁이 발생할 경우 우리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민족의 영토가 오히려 축소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꿈을 놓지 않되 철저히 현실에 바탕한‘지혜’이다. 우리가 60년 대립의 남북분단시대를 넘어 한반도 통일정부를 지혜롭게 성사시켜 나가야만 이 힘을 바탕으로 동북아에서의 주도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고 이 길만이 민족의 영토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고대중국 ‘한나라’에 맞서 동북아의 신흥강국을 꿈꾸었던 <주몽> 을 보면서 지금 우리 민족의 현실적인 꿈은 어디일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주몽>
/이재규(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