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공정한 게임, 그 후

1988년 서울올림픽의 여흥이 채 가시기도 전, 우리는 한 미결수의 외마디 소리를 들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지금 생각해 보면 미결수 지강헌이 처음 한 말은 아닐 듯 싶다. 구치소나 교도소 담장 너머에서만 낯선 단어였을 뿐 아마도 그 내부에서는 유행어처럼 사용되던 말이 아니었던가 한다. 당시 상황이 생중계된 탓에 탈주한 미결수들과 경찰의 대치상황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특히 주동자 지강헌이 스콜피언스의 ‘홀리데이’ 노래를 들으며 삶을 마감한 장면은 우리가 생각하던 범죄자와는 유다른 모습이었다.

 

동전의 양면처럼 공공의 질서와 개인의 인권은 양립한다. 이 둘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살 수 있는 사회가 바람직하겠지만 체감하는 분위기는 이와 사뭇 다르다. 재벌 총수들은 수사망이 좁혀오기도 전에 외유를 떠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한다. 실제 상황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서민들은 이러한 재벌들의 행태에서 유전무죄의 모습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이러한 기억은 서민들이 경찰서나 검찰을 드나들면서 겪었던 애환과 대비될 때 무전유죄의 만감이 교차하게 된다.

 

최근 경찰에서는 영어 등 13개국 언어로 된 미란다 원칙 고지문을 일선 경찰서와 지구대에 배포했다. 우리가 영화 속에서 익히 들었던 “귀하는 진술거부권이 있고 변호인을 선임해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미란다 원칙은 미국에서 시작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유효한 권리에 속한다. 피의자의 입장에서 신문 초기단계의 변호인 입회권 행사는 아주 중요한 권리이지만 이를 행사 할 수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것이 현실이다. 변호인 입회권은 수사과정에서의 인권침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피의자의 진술이 자신을 불리하게 할 수 있는 상황 역시 사전에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누구의 책임을 따지기 이전에, 고지의 의무를 다 했다지만 묵비권 역시 피의자들이 권리로써 행사할 수 있는지는 의심스러운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점에서 지난주에 접한 ‘현직 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에 관한 신문연재 소식은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이번 주에는 연재중단의 소식을 우리는 들었다. ‘조직에 민감한 글’을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가 문제라는 신문사측의 전언이 사실이라면 아쉽기 그지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