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분만실을 제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신세대들은 어쩐지 모르겠으나, 촌구석에 태반을 묻고 사는 출향객들에게 추석명절은 명절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새로 난 오곡백과로 차례를 지낸 후 조상님의 묘소를 찾아 음덕을 기리는 일은 정해진 순서이거니와, 가족 행사가 끝난 다음 애증의 세월을 함께 했던 이웃사촌들과 과거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특별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는데 어찌 추석이 그냥 명절이겠는가.
자동차가 자전거보다 많은 요즘이사 마음만 먹으면 고향길 나서기가 일도 아니다. 그러나 교통비 한푼이라도 아끼려고 어지간한 거리는 걸어서 다니던 시절에는 고향길이 사돈집 제삿길보다도 멀었다. 그래서 평소 고향집을 찾지 못하던 출향객들은 설,추석 양대 명절이라도 고향에 내려가려고 너도나도 귀성길에 올랐다. 혹 무슨 사정이라도 있어 고향에 못 내려가는 출향객이라도 생기면 '사업하다 부도가 났다' '직장에서 쫒겨났다더라' 등등 별 악소문이 퍼질 정도였으니 당시 귀성 풍속도를 미뤄 짐작할 만하지 않은가.
명절이 가까워지면 버스터미널과 기차역은 한꺼번에 쏟아져나온 귀성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표 사기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여서 날밤을 새며 줄서는 것은 다반사요, 설사 표를 구했다 하더라도 차에 오르는 것 또한 장난이 아니었다. 어찌나 사람이 많이 몰려들었던지 예비차까지 동원해도 모자라 보통 정원의 두세배까지 꾸역꾸역 몰아 넣었으니 그게 짐짝이지 사람이었겠는가. 그래도 귀성객들은 조금만 참으면 고향집에 당도할 수 있다는 생각에 즐거운 마음으로 견뎌냈다.
한데 이상한 일이다. 자가용 없는 집이 없고 도로도 사통오달을 했는데 명절 귀성객은 오히려 줄고 있으니 말이다. 두말할 필요 없이 농촌인구가 크게 줄어 찾아오는 이가 적어지고, 그나마 있는 부모들마저 자식 찾아 역귀성을 하고 있는 탓이 크다. 토박이 농민들은 이제 명절이 닥쳐도 명절 기분이 나지 않는다고 푸념을 한다.
설상가상으로 추석명절은 아예 제쳐놓고 해외여행을 떠나버리는 '나대로 족'이 크게 늘고 있어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한다. 이민간 동포들도 명절이면 고향쪽으로 차례상을 차려놓고 조상님께 절을 올린다는데 이게 무슨 조화속인지 모르겠다. 이제 농촌의 추석은 휘영청 밝은 대보름달만 쓸쓸히 지켜보게 생겼으니 실로 '고향무정'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