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동쪽은 해가 뜨는 방위라서 일의 시작과 푸름을 상징하고, 서쪽은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저무는 석양을 나타내고 있으며, 남쪽은 젊음과 정열을, 북쪽은 한겨울의 저장과 은둔 그리고 다시 또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고 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대부분 동쪽 방에 오래 거주하게 되면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기운이 함양되는 반면, 서쪽 방은 다소 사색적이고 폐쇄적인 기운이 스며들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 왕조시대에도 다음 왕권을 걸머질 세자를 동궁(東宮)에 기거하게 하고 동궁마마라고 불렀는가 하면,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어찌하지 못하고 결국 유폐한 곳이 바로 서궁(西宮)이었다는 사실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처럼 우리인간은 비록 직접 인식하고 있지는 못할지라도, 해와 달과 기류가 만들어내는 무지막지한 변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건축물을 배치할 때나 방을 나눌 때도 그 변화를 적절히 활용하면 여러 가지 지혜를 얻을 수 있게 된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공부는 스스로 열심히 노력해야 잘하는 것이겠지만, 만약 공부를 잘하는 방이 따로 있다면 다들 귀가 솔깃해지게 된다. 그런데 정말 공부를 잘하는 방이 존재한다. 아니,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방위」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북서쪽이다.
북서쪽은 팔괘 상으로 건방(乾方)에 해당되는데, 건(乾)은 「하늘」이라는 뜻과 함께 주인을 상징하고 있다. 태극기만 봐도 그렇다. 가운데 둥그런 태극을 중심으로 네 모서리에 각각 「건곤감리」가 차례로 배치되어 있는데, 이때도 「건(?)」은 북서쪽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또 북서쪽은 다른 방위와는 달리 하루 종일 일영(日影)의 변화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 방향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북서쪽에 오래 기거하게 되면 성격은 차분해지고, 생각마저 깊어지게 된다고 한다.
물론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옛날 학창시절에 사용했던 공부방 위치를 곰곰이 한번 더듬어보자. 잠시잠깐 거처한 방보다는 오래 사용한 방이라야 한다. 수긍가는 대목이 적잖을 것이다. 그게 바로 하나의 생활공간 안에서도 알게 모르게 차이를 드러내는 「방위의 힘」이며, 「공간 기과학(氣科學)」의 작용인 것이다.
/삼호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