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등에 닿을 정도로 춥고 배고프게 지지리도 못살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요즈음 우리나라에서 나오고 있는 음식물 쓰레기를 보면 정말 놀랍기 짝이 없다.
만약 우리가 버리고 있는 음식물 쓰레기만 잘 관리해서 쓰레기가 되지 않게 하여 불우한 이웃들을 도와줄 수만 있다면 사회복지의 차원이 바꾸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여행중 서울 인근의 역전 대합실에서 느끼는 것은 분명 예전에 비하면 상당히 잘 사는 나라가 된 것은 분명한데 우리들 주변에는 아직도 누군가는 보살펴 주어야 할 이웃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크나큰 모순 중의 하나라고는 할 수 있겠지만 빈부의 격차에 대하여 절감 할 수 있는 현장은 역전 대합실 말고도 곳곳에 산재되어 있는 것 같다.
이러한 현실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반드시 실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금강경에서처럼 누구나가 내 것이라는 소유욕에서 벗어나 아낌없이 베풀 수 있을 때 자연스럽게 부처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며 이러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우리들은 부처님 나라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베품의 실천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물질을 베풀어 주는 것을 재보시라고 하고 마음을 일깨워 주는 것을 법보시라고 하며 위로하고 격려하며 불안한 마음을 안심시켜 주는 일을 무외보시라고 하는데 보시의 실천에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다.
이를 삼륜청정이라고 하는데 첫째 베품을 실천하는 사람의 몸과 마음이 청정하여야 한다.
가장 윤리적이고 도덕적이며 양심적인 보시의 실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받는 사람의 몸과 마음이 청정하여야 한다.
맑고 청순한 영혼으로 감사하며 받은 것 열배, 백배로 이웃들에게 베푸는 사람이 될 것을 다짐하는 귀한 인연 공덕을 지어야 할 것이다. 세 번째는 주고받는 대상물이 청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양심에 어긋나거나 사회적인 지탄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삼륜청정보다도 더 중요한 일은 네 가지 상(4상)을 버려야 한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상, 너는 너고 나는 나라는 상, 남보다 편하게 대접만 받으려는 상, 영원히 살고 싶어 하는 상이 있으면 진정한 의미의 보시바라밀은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네 가지 상에 머뭄이 없는 보시의 실천은 너무나도 어렵기 때문에 베푸는 것을 도를 닦는 일이라고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보다는 나보다는 남을 배려하고 포용하면서 넉넉하게 베풀면서 살아갈 수만 있다면 이것이 바로 도 닦는 사람의 기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집착과 애욕으로부터 자유로운 보시의 실천자가 될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기원하는 바이다.
/도영(송광사 주지·전 조계종 포교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