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한글 깨치기

취학 전 아동들에게 한글을 가르치지 말라는 말을 그대로 믿는 이는 이제 별로 없는 듯하다. 남에게 뒤질세라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먼저 한글을 깨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부모들이 늘어나는 추세도 이러한 한글 조기학습에 일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한글 학습과정이 어린 아이들에게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겠지만 그와 반대로 세상에 대한 신뢰 상실을 맛보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 까닭은 심오한 데 있지 않다.

 

한글 맞춤법 총칙 제1항에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표준어를 발음대로 적는다는 기본원칙에다 뜻을 파악하기 쉽도록 각 형태소의 본 모양을 밝히어 적는다는 단서조항이 붙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우리말을 적을 때에는 말 그대로 소리 나는 대로 적어서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만 적을 수 없는 대표적인 이유는 받침글자가 이 단어 저 단어 같은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병이 호전되었다’는 ‘낫다( )’와 ‘높지 않다’는 ‘낮다( )’는 서루 의미가 분명히 다른데도 발음은 둘 다 〔낟따〕로 되어서 소리 나는 대로 적으면 이 두 단어 사이의 구분이 어렵다.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법’이란 것을 통해서 같은 발음이라 하더라도 달리 적어서 그 형태를 구분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런 어른들의 성숙하고 사려 깊은 생각을 어린 아이들이 헤아릴 수 있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글을 깨우치면서 음소문자의 장점을 터득하고 그 재미에 푹 빠져 있던 아이들은 어른들이 파 놓은 소위 ‘어법’에 그대로 걸릴 수밖에 없다.아이들은 자신이 받아 쓴 한글 표기가 잘못되었다는 엄마와 선생님의 지적에 고민한다. 그리고 단어와 문장의 어법을 헤아릴 수 없는 아이들은 당연히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데 이르게 된다.

 

‘내가 잘 못 들었구나’하는 판단을 하게 된 아이는 이후의 받아쓰기는 물론이고 다른 환경에서도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기 시작한다. 그리고 또 다른 지적을 받았을 때 그 탓을 자신에게 돌리고 의심하는 과정을 반복하게 되고 자신에 대한 불신은 더욱 강화된다. 아이들의 교육에 관심을 갖는다면 이런 관점에서 아이들의 생각을 헤아려 보는 여유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