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도입하고 시행해야할 선진국형 회계제도이지만 그 도입경위가 마치 1910년 일제침략에 의해 국권을 상실하고 식민지로 강제 편입된 경술국치와 흡사하여 매우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이제 복식부기라는 회계제도 도입이 자치단체까지 불가피한 실정이다. 한달 후면 지방분권특별법과 지방재정법에 근거하여 좋든 싫든 모든 자치단체가 일제히 시행하게 된다.
복식부기라는 회계제도가 그동안 금융기관이나 법인에서는 운영되어 왔던 제도이지만 공직사회에 연착륙하려면 우선 그 운영자인 공무원 개개인이 예산에 대한 전문지식은 물론 결산과 회계, 전산 등 4박자에 대해 보다 해박한 지식에 의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이 4개 분야의 각기 다른 행정행위가 복식부기에서는 상호 유기적인 연관성이 있으므로 정확한 회계처리를 위해서는 이 분야에 대한 실무처리 능력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
자치단체의 복식부기 회계제도 도입으로 이제 자치단체의 자산규모와 재정상태가 중요하게 여겨질 것이다. 자산비율이란 곧 주민들에 대한 공공서비스 제공의 잠재력과 경제적 이익을 창출해 내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혹자들은 자산비율이 높다고 어디에 쓸것이며 팔아먹지도 못할 자산이 몇조원이면 뭐하냐고 하는데 일견 그럴듯한 이야기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만약 외국자본이 어느 시에 투자하려는데 그 자치단체의 자산규모나 재정상태가 왜 중요하지 않겠는가. 부채가 많아 곧 부도날 지역에 투자할 미련한 투자자는 없을 것이다.
지금은 지구촌 시대이다. IMF이후 그 공룡같은 거대한 금융기관도 하루아침에 퇴출되고 대마불사의 신화를 자랑해온 대우도 힘없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말았다.
자치단체도 이제 재정 상태가 나쁘면 부도나고 도산한다. 부실한 자체단체는 인근 자치단체에 흡수 통합되는 날도 멀지 않았다. 어쨌든 이제 21세기형 지방재정운용 시스템의 꽃이라고 일컫는 복식부기의 시행은 선택이 아닌 필수과제로 다가왔다. 성수대교 붕괴같은 후진국형 안전사고가 우리나라에서 자주 일어나는 것도 복식부기를 도입하지 않는데 그 원인이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단식부기에서는 현재 전산의 가치만 평가하기 때문에 결산시 사회기반 시설이나 주민 편익시설 등의 분석과 평가에 사각지대가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복식부기 시행은 카운트다운됐고 초유의 개시 재무제표는 곧 작성된다. 이 제도가 조기에 공직사회에 정착되어 분식회계의 천국이라는 오명을 씻고 지방자치 단체의 건전 재정 운영을 위해 책임성과 투명성이 확보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병채(남원문화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