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
미당 서정주의 시 ‘선운사 동구’가 탄생한 배경엔 이런 사연이 있다. 1942년 부친의 장례를 마친 미당이 상경하기 위해 선운사 동구의 버스정류소를 향해 비를 맞으며 걷는데 눈에 주막이 들어왔다. 주모는 마흔 남짓의 훤칠한 여인네였다. 다짜고짜 육자배기를 부를 줄 알면 들려달라고 했다. 처음엔 모른다고 뚝 잡아떼더니 막걸리를 억지로 권해 몇잔 거나하게 마시게 했더니 나중에 육자배기를 불러주더라는 것이다.
육자배기는 전라도의 대표적인 민요다. 박자가 느리고 한(恨)과 서정이 흐르는 느낌을 주면서 구성진 맛이 있다. 대개는 농삿일의 고단함과 시름을 달래기 위해 불려졌다. 선운사 동구 주막의 여인네처럼 막걸리를 곁들여야 제격이다.
막걸리를 상품화하는 이른바 ‘막 프로젝트’(막걸리 산업화)가 관심을 끌고 있다. 외지에서 오는 사람도 늘고 있다. 얼마전 한옥마을에서는 막걸리 무료 시음회와 막걸리 빨리 마시기, 막걸리 주량대회 등 막걸리이벤트가 열렸다. 또 표준화된 기본 안주도 개발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육자배기 가락처럼 느림의 이미지가 강한 막걸리를 놓고 빨리 마시게 하는 대회를 여니 어쩐지 좀 이상하다. 안주를 규격화하는 것도 그렇고…. 획일화하기 보다는 구역이나 막걸리 집에 따라 안주나 인테리어, 독특한 문화 등을 특화해 나가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게중에는 판소리나 단가, 육자배기 등 소리와 민요를 즐기고 시연할 수 있는 막걸리 집도 필요하다. 소리나 민요는 우리 삶을 표상화한 것이다. 따라서 생활속으로 끌어들이는 게 중요하다. 그것이 곧 대중화일 터이다. 단가는 가볍게 부를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일반인들에게도 부담스럽지 않다.
텁텁한 막걸리 한잔에 단가나 육자배기 가락 들으며 시름 걱정 흘려보낼 수 있는 공간을 특화하면 어떨까. 그런 막걸리집이라면 외지인들한테 관광상품화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속에서 ‘선운사 동구’ 같은 명시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소리의 고장이라는 지역의 막걸리 집에서 소리 한가락 들을 수 없대서야 말이 되겠는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