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목욕은 날씨에만 관련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먹고사는 것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옛날 살기가 곤궁하던 시절에는 언감생심 목욕탕에 가는 것은 정말 꿈도 꾸지 못했다. 일 년에 한두 번씩 연례행사로 목욕을 하는 게 고작이었다. 또 기껏 목욕이라고 해봐야 장작불로 뜨끈뜨끈하게 지핀 물을 큰 물통에 받아다가 그걸로 몸을 씻고, 묵은 때를 밀어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져도 참 많이 달라졌다. 작은 동네목욕탕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는가 싶더니, 그 자리엔 어느새 대형 스포츠센터와 안락한 휴게시설을 겸한 최신식 사우나시설이 등장하였다. 이제 문만 열고 들어서면 없는 게 없다. 머리도 깎고 안마도 받고, 운동도 하다가 그것도 실적해지면 술 한 잔을 곁들이면서 식사까지 하게 된다. 아니, 나중엔 아마 댄스파티까지 열릴지도 모른다. 목욕탕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변했다.
이렇게 하나둘 짚어가다 보면, 지금 우리의 이런 풍경이, 어쩌면 그렇게 과거 로마와 비슷해져 가는지 모르겠다. 옛날 로마시대 때도 그랬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며 자부심이 대단했던 당시 로마인들도, 남아도는 경제력과 노예들을 몰아붙여 대규모 「콜로세움」도 세우고, 「판테온신전」도 세웠다. 그런데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점점 더 주체할 수 없는 향락의 세계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동시에 이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가로 230미터, 세로 115미터 규모의 어마어마한 「카라칼라욕장」을 세우고, 그 안에서 최고의 자유와 향락을 누렸다고 한다. 오죽하면 먹는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서 먹고 마시고 즐기다가, 배가 불러서 더 이상 먹을 수가 없게 되면, 일부러 손가락을 목구멍에 집어넣고 토해가면서까지 먹고 마시고 즐겼다고 한다. 그럴수록 노예와 빈민층의 생활은 피폐해졌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게 로마는 대중목욕탕을 중심으로 한 쾌락에 깊이 빠져들었다가, 마침내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으로 476년 멸망을 당하게 된다. 물론 로마의 멸망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었겠지만, 어쩌면 시대정신이 퇴락하면서 나타난 향락산업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조짐은 「카라칼라욕장」 이라는 전대미문의 대형목욕탕 건축으로 이미 예고되어 있었던 것이다. 건축역사로 훑어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삼호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