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와 관련된 기억 중에서 서산마애 삼존불상을 빼 놓을 수 없다. 몇 년 전 우연한 기회에 서산마애 삼존불상을 찾았다. 바위 밑에 지어진 덧집 안에 불상이 모셔져 있었다. 연꽃잎을 새긴 대좌 위에 서 있는 여래입상, 머리에 관을 쓴 보살 입상 그리고 오른쪽의 반가상 모두 만면에 미소를 띤 부드러운 얼굴이었다. 옛날에는 덧 집이 없었는데 삼존불상의 훼손을 염려하여 덧집을 지었다고 한다.
마애 삼존불상의 특징은 바위에 그려진 불상의 얼굴 표정이 빛의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지금은 덧집 때문에 자연 채광 을 기대 할 수 없게 되었는데 너무나도 아쉬운 점이다. 단체 손님이 가면 안내하시는 분이 자연체광 대신에 전등으로 불상을 비추어 준다. 우리 일행은 운 좋게 그 광경을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 전등이 비추는 방향에 따라 처음에는 온화하면서 인자한 표정 다음에는 근엄하고 엄숙한 표정 그리고 유쾌하고 익살스런 표정의 불상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말로만 들었던 이른바 백제의 미소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된 것이다.
그때의 그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유쾌하고 익살스럽게 웃는 듯한 표정의 불상이 마치 살아서 바위에서 뛰쳐나올 것 같은 감동을 받았다. 나는 지금도 가끔 삶의 크고 작은 경계가 올 때 백제의 미소를 생각한다. 백제의 미소를 떠올리는 순간 나의 마음 깊은 곳에서 어린보살의 깔깔대며 웃는 모습이 솟아올라 나의 어둡고 무거운 마음들을 어느새 즐겁고 유쾌한 마음으로 바꾸어 주기 때문이다.
백제의 미소는 부처님의 미소라기보다는 백제 민초들의 미소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더욱 친금감을 느끼고 정감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백제의 미소는 역사의 흐름과 함께 지금 우리 시대의 미소로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위에 새겨진 백제의 미소를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우리들의 얼굴과 표정으로 되살려 낼 수 만 있다면 우리가 바로 부처이고 이 세상이 바로 극락이고 낙원세계가 아닐 것인가?.
날씨는 춥고 일자리는 없고 서민들의 주름진 얼굴은 근심이 깊다. 이럴 때 서산 마애 삼존불상을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의 아픈 상처가 기쁨과 희열로 치유 될 것이다. 미소 가 있는 삶을 살아보자. 아침엔 거울 보며 미소 짓고, 낮에는 만나는 사람에게 미소를 건네고, 저녁엔 홀로 앉아서 미소를 음미하며 살자. 백제의 미소를 되살리는 산부처(活佛)가 될것이다.
/황성학(원불교전북교구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