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광고 회사의 커리어우먼 여종숙씨(32). 아름답기까지한 그녀가 첫 눈에 반한 남자는 페루인 라파엘 몰리나(38) 였다.
그들이 처음 만난 곳은 ‘베사메무쵸’가 울려퍼지던 지하철 역. “지속적으로 공연할 수 있는 곳이 지하철 역밖에 없었다”는 그는 KBS ‘인간극장’을 통해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다.
“방송 이후로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그런데 라파엘의 한국말은 방송 이후로 전혀 늘지 않은 것 같아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어떤 질문에도 “괜찮아요” “좋아요”만 반복하던 라파엘. ‘똑 소리 나는’ 아내’가 끼어들었다.
“페루에서도 비슷한 대상을 상대로 공연한 적 있어요. 남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흥이 있어서 일반적인 공연과 별반 다르지 않았죠.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특히 공연을 하는 입장에서는 모든 공연이 다 똑같죠.”
한국소리문화의전당 ‘2006 찾아가는 음악회’에 동행, 15일 송천정보통신학교(법무부 소년보호교육기관)에서 공연한 라파엘은 “공연 전 관객들 반응이 없어도 이해해 달라는 말을 들었다”며 “반응 없는 것에 대해서는 지하철에서 공연하며 2년 동안 훈련이 됐다”고 웃었다.
“오히려 저는 지금까지 공연 중에서 고민을 제일 많이 한 것 같아요. 예민할 때인 젊은 친구들이 특수한 상황에 처해있다 보니까 무엇보다 말을 조심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라파엘이 솔로로 출발하면서 부터 늘 옆자리를 지켜온 아내. 여씨는 스스로 “약간 연예인 기질이 있는 것 같다”며 “관객 입장에서 안데스 음악을 들었을 때 설명이 더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에 ‘공연 도우미’를 자처했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에서는 라파엘이 늘 연주하던 ‘베사메무쵸’를 들을 수 없었다. 대신 호기심 많은 학생들을 위해 안데스 악기들을 많이 선보이려고 노력했다. 쌈보냐 계열의 안데스 지역 악기를 비롯해 기타와 플룻, 피리 등 이날 연주된 악기는 10여가지. 라파엘은 “한국의 대금과 페루의 께나초가 비슷하지만, 대금의 음색이 더 슬퍼 울림이 큰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가장 이상했던 것은 ‘밥 먹었냐’는 인사말.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말이 됐다.
한국 사람들이 안데스 음악에 귀 기울일 때 행복하다는 라파엘.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아기”라고 답했다. 2세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한 계획이라는 라파엘의 심각한 대답에 아내는 또 나설 수 밖에 없다.
“안데스 악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요. 2년 정도 지나고 나면 공간을 마련해서 안데스 음악을 본격적으로 가르치고 싶대요.”
“라파엘 아니면 누가 네 성격을 받아주겠니”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는 여씨. 그러나 ‘쿵짝’이 잘 맞는 아내가 없었다면 라파엘의 한국 생활이 지금처럼 행복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