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문화적으로 받은 인상이 참 선명했다. 우리는 그간 서구문화를 텍스트와 콘텍스트로 하여 문화를 교육하고 평가했다. 그러다보니 중남미하면 대개는 비합리적 열정에 사로잡혀있거나 후진된 문화를 가진 지역으로 잘못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학 음악 미술 공연예술, 그 위 철학에 이르기까지 온통 유럽이 우리의 거울이고 잣대인 셈이었다. 여기에 미국문화가 보태어져 주변과 중심의 논리까지 형성되기에 이르고, 그러다보니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지평은 그리 넓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대학생들의 방학 중 배낭여행 같은 것도 대부분 북미가 아니면 유럽에 집중되고 있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여서 학창시절 이후 문화적 편식 증상이 심했던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러다가 접한 중남미의 문화는 신선함을 넘어 놀라움의 대상이었다. 우선 내가 전공하고 있는 미술 분야에 있어서만 하더라도 화선지나 모필 문화보다 먼저 서구 명화들을 접했던 것이고 보니 중남미권의 라틴미술까지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쿠바 멕시코 브라질을 시작으로 칠레 페루에 이르기까지 그 다양하고 화려한 형태와 색채의 미술들은 그 광휘가 결코 서구 현대미술에 뒤지지 않았다. 필자가 이번 여행을 색채학습 여행이라고 제자들에게 소개했을 정도로 색채에 대한 풍성한 감수성을 체험하게 되었다.
마치 미지의 숲을 헤치며 가듯 나는 중남미의 그 화려하면서도 강렬한 색채 속에 잠겨 황홀경을 맛보게 되었던 것이다. 이번 여행 중 필자는 개인이건 국가건 지역이건 자기만의 고유성을 가져야만이 살아남게 된다는 평범한 사실을 다시 직시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오가는 비행기와 기차 속에서 나와 내 고향, 내 나라의 문화 고유성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국제 경쟁력의 시대에는 자기만의 색깔과 고유성에 대한 요청이 더욱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남미가 섣부른 서구중심의 문화국제화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삶과 전통 속에서 고유한 빛깔과 색깔의 문화를 유지하고 있어 오늘날 그 생명력이 빛을 발하는 것처럼 우리 지역의 문화도 그 고유한 정서를 바탕으로 특화되고 제 색깔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될 것이다.
흔히들 문화전북이라고 말한다. 판소리 가락 멋들어진 예향, 수묵화와 서예의 묵향 은은한 곳이 바로 전북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이 좋은 전통의 숨결과 맥을 오늘에 어떻게 되살려 낼 것인가에 우리의 고민이 있다. 후기 산업화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예향전북이 청량한 한줄기 바람과 샘물이 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에 대해 문화전북의 두뇌가 모아져야 할 것이다. 경제적으로 극심하게 어려운 쿠바가 그 고유의 음악을 브랜드로 하여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같은 그룹을 세계에 내어놓았듯 우리 전북도 전통의 재료를 현대에 속속 꽃피워 낸다면 그 독자성으로 하여 머지않아 더 많은 각광을 받게 될 것이다. 근자에 영화제나 서예비엔날레 등 문화전북의 위상을 한껏 드높이고 있는 행사들은 이점에서 좋은 기폭제가 되고 있다.
/김병종(화가·서울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