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임금이 하나라를 다스릴 때 제후인 유호씨(有扈氏)가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왔다. 우임금은 아들 백계(伯啓)로 하여금 싸우게 했으나 참패했다. 백계의 부하들이 패배를 인정치 않고 다시 싸우기를 간청했다. 그러자 백계는 “유호씨에 비해 병력이 많은 데도 참패한 것은 나의 덕행과 부하를 가르치는 방법이 그보다 못하기 때문”이라며 “먼저 나 자신의 잘못을 고쳐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하고는 싸우지 않았다. 이후 더욱 검소하게 살고 덕있는 사람을 존중하며 분발했다. 이런 사정을 안 유호씨는 감복해서 침범하지 않고 백계의 품에 들어갔다. 잘못된 원인을 핑계대지 않고 자신한테 찾아 고쳐나간다는 의미의 ‘백계의 고사’다.
대학 교수들이 새해 소망을 나타내는 사자성어로 '반구저기(反求諸己)'를 꼽았다. ‘맹자 공손추’ 편에 나오는 글귀로, 일이 잘못됐을 때 남을 탓하기보다는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 고쳐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대선을 앞두고 '네 탓'하는 사람들이 설치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정부가 정책 실패를 남의 탓으로 돌리면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배경이 있을 것이다.
지난 2001년부터 선정하기 시작한 ‘올해의 사자성어’를 보면 시대상을 읽을 수 있다. 2001년 오리무중, 2002년 이합집산, 탄핵의 해인 2003년 우왕좌왕, 2004년 당동벌이(黨同伐異=패거리 지어 다른 편을 공격함), 2005년 상화하택(上火下澤=위에는 불, 아래는 못이라는 뜻으로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 반영), 지난해의 밀운불우(密雲不雨=구름은 가득하나 비는 오지 않아 답답함) 등이 그것이다.
대선의 해를 맞아 정치인들도 저마다 새해 화두를 사자성어로 내놓고 있다.
고건 전 총리는 주역에 나오는 운행우시(雲行雨施=구름이 움직이니 시원하게 비가 내림)를,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맹자의 양혜왕장구상에 있는 한천작우(旱天作雨=심하게 가물어서 싹이 마르면 하늘은 자연히 구름을 지어 비를 내림), 정동영 전 의장은 구동존이( 求同存異=이견은 미뤄두고 의견을 같이하는 분야부터 협력함)를 꼽았다.
사자성어는 시대를 풍자하고 촌철살인하는 맛이 생명이다. 중요한 건 말로만 그치지 말고 실행하는 것이다. 대선의 해에 정치인들이 백계의 고사를 떠올리며 ‘반구저기’를 새기면 세상이 조용해질 것 같은데 어떨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