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백의 一日五話] 1991년 일본 총리 가이후수상 탑골공원 참배

◎ 1월 9일

 

①인명 위자료만 11만원 지불

 

1882년 갑신정변의 결과로 일본인 거류민의 살해와 공사관 소실에 대해 배상문제로 일본은 한국정부에 손해배상과 사망자에 대한 위자료를 요구해 왔다. 1885년 오늘, 소위 한성조약을 체결하고 한국측은 11만원을 보상키로 하고, 공사관 신축비로 2만원을 지불했다.

 

②나일강 댐 기공

 

이집트 나일강에 설치한 아스완 하이댐의 기공식은 1960년의 오늘이었다. 이날 낫세 아랍연합대통령은 식사를 통해 “아랍 민족의 투쟁과 역사적, 인도적 사명을 달성하려는 우리결의의 상징”이라고 연설했다. 이 댐의 공사는 10년 후에 달성을 보았다.

 

③종교입장서 러·일 전쟁 반대

 

일본 무교회 기독교의 창시자 우치무라(內村鑑三)는 1891년의 오늘, 소위 교육칙어 봉대식에서 신앙상의 입장에서 경례를 안했다는 불경사건으로 제1고등학교 교사직에서 추방됐다. 그는 청·일 전쟁에서는 ‘의전론(義戰論)을 주장했지만 러·일 전쟁은 기독교적 입장에서 완강히 반대했다.

 

④나폴레옹 3세 사망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의 본명은 ‘루이 나폴레온’으로, 나폴레온 1세의 조카로서 1848년 2월 혁명 후 2공 대통령이 됐다가 1852년 황제로 추대됐었다. 그 후,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황제에서 물러나 1872년 영국에 도망하여 살다가 이듬해 오늘 사망했다. 65세였다.

 

⑤일본 총리, 탑골공원 참배

 

한국을 방문중인 일본의 내각수상 가이후(海部俊樹) 내외가 1991년의 오늘, 각종 사회단체의 항의시위 속에 서울의 탑골공원을 방문, 사죄의 참배를 했다. 일본 총리로서 3·1운동의 진원지인 이곳을 방문한 것은 가이후 수상이 처음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