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라디오가 전하는 작지만 큰 사랑 - 박정민

박정민(전주MBC라디오 943전망대 구성작가)

정해년 새해부터 방송국은 새해 맞이로 정신이 없었다. 신년특집과 새로운 아이템 구상으로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던 와중에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생방송 중이어서 장시간 통화가 불가능했던 터라 마음이 급한 필자는 쉽게 말을 잇지 못하는 상대방에 약간의 짜증이 나 있었다. 힘겹게 말을 잇는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

 

“저 죄송합니다. 방송을 듣다가 전화 드렸습니다…. 제가 시각장애자인데…. 얼마 전에 라디오가 고장났습니다. 형편이 좋지 못해서 라디오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어떻게 안 될까요?” “아 네….”

 

난 잠시 멍한 상태로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수화기 건너편에서는 본인의 사정 이야기를 어렵게 꺼낸 분의 음성이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짧은 대답을 하고 난 뒤 생방송 진행을 계속했다. 담당 PD와 상의 한 뒤 방송으로 내보내기로 하고 방송용 모니터에 한 글자 한 글자 옮겨 적기 시작했다.

 

“지금 000씨가 라디오를 구하고 계십니다. 소중한 정성을 보내주실 분 연락주십시오.” 진행자의 멘트가 끝나기가 무섭게 전화기의 벨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혹시?” 간혹 방송 상품을 위해 허위제보나 거짓 사연을 올리는 이른바 꾼(?)들이 많아 그런 종류의 전화가 아닐까 내심 걱정스런 맘이 앞섰다.

 

“방금 방송 들었는데…. 제가 라디오가 있는데요. 그 분을 위해 드리고 싶습니다. 주소가 어떻게 되나요?”

 

혹시나 하는 걱정을 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바로 다음날 라디오를 주실 분이 몸소 방송국을 찾아 주셨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분 역시 시각장애인이었다는 것이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방송국을 직접 찾은 그 분은 하루라도 빨리 직접 보내드리고 싶어서 찾아왔다면서 수줍은 미소를 끊임없이 지으셨다. 시각장애인은 볼 수 없기 때문에 TV 보다는 라디오에 많이 귀를 기울이는 편인데,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겠냐는 말을 이으면서 약간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셨다.

 

금액으로 치자면 요즘 라디오는 얼마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걸음에 작은 전파를 타고 흐르는 사연을 접한 뒤 방송국으로 달려 올수 있는 용기는 누구나에게 있지 않다. 순간 그 분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가슴속에게 울컥 뛰어 올랐다. 라디오를 보낼 그분의 주소를 소중히 품안에 간직하고 뒤돌아 나서는 또 한 분의 장애인을 보면서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최근에는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생방송 말미에 다급하게 걸려온 전화 한 통. 다름 아닌 정신지체 딸아이를 찾는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8시간 넘게 소식이 없는 딸아이의 찾는 아버지의 음색은 몹시 떨렸고, 안타까움이 절절했다. 사연을 방송으로 내보낸 뒤 30분쯤 기다렸을까? 뜻밖에 익산에서 제보 전화가 왔고, 19살의 소중한 딸은 김제시가 아닌 익산시의 모처에서 그렇게 찾게 되었다. 아이는 다행히 추위에 떤 것 이외에는 별 탈 없이 집으로 돌아 올수 있었다. 그 뒤 그 아버지는 열혈한 943전망대의 팬이 되었다. 다른 사람이 혹시나 자신과 같은 일을 겪었을 때 기꺼이 도움을 주고 싶다며 힘든 일손중에도 귀는 언제나 943 채널에 맞춰 열어놓고 계신다고 한다.

 

그것이 제보해 주신 분이나 방송국에 대한 보답이라는 그 분의 순박함이 왠지 모를 뭉클함으로 다가옴과 동시에 지역 방송의 책임 같은 것이 느껴졌다. 최근 필자에게 일어난 일련의 에피소드는 쉽게 지나칠 수도 있는 방송의 의미와 소중함 그리고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방송인으로서 아니 사람으로서 나눌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함께 나누고, 그 작은 실천의 마음의 온기를 보고 감동할 줄 아는, 박수 쳐 줄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자고, 그런 방송을 만들어 보자고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박정민(전주MBC라디오 943전망대 구성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