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에서 논술의 비중이 커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새로운 풍속도가 생겨났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지방 학생들이 대거 서울의 학원가로 유학을 떠나는 것이다. 학생들은 한 달이나 두 달 동안 유명 학원들이 밀집해 있는 대치동이나 노량진 근처에서 기거하며 논술훈련을 받는다. 지방에서는 믿고 다닐 만한 논술학원이나 선생님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다. 논술의 비중이 커지는 2008년 대입부터 이런 현상은 가속화될지도 모른다.
한 쪽에서는 인문학의 위기를 부르짖고 있는데, 다른 한 쪽에서는 많은 학생들이 논술을 공부하기 위해 서울유학을 한다고 하니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논술의 내용이라고 하는 것이 모두 인문학적 사고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문교양서적은 단 몇 백 권도 팔리지 않는데, 논술교재 시장은 수 조 원대에 달한다고 한다. 논술교재가 훈련시키고자 하는 것은 결국 인문학적 사고력이다. 아무도 인문학 서적을 읽으려 하지 않지만, 모두가 인문학적 사고력을 키우고자 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인 셈이다.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12년 동안 학교 현장에서 교육받아 본 적이 없는 철학적인 문제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제시하고 근거를 대라고 하니 막연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교사들로서도 대학에서 도입하겠다고 하는 통합논술에 대비하려고 하니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득점을 약속하면서 학부모와 학생의 불안 심리를 파고드는 논술 사교육 시장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근원적인 철학적 물음에 대해 답하는 것이 한두 달 훈련받는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단기간에 논술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광고는 모두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논술시험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있지만, 논술교육이 올바로 이루어진다면 교육적 불평등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바람직한 입시제도라고 생각한다. ‘올바른’ 논술 교육의 전제는 학생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교육을 하기 위해서 대단한 인프라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인문학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학생들과 책을 읽고 토론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부모나 교사만 있으면 된다. 아이들은 책을 읽고 토론하는 가운데 스스로 생각을 키운다.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책을 읽고 토론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준다면 논술 유학은 필요 없을 것이다.
교육 불평등이 경제적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점점 고착화되어 간다고 한다. 이런 경향은 분명히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서도, 적어도 논술교육만큼은 시장의 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고려대학교 철학과 및 동대학원 졸, 철학박사(서양철학전공)
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고려대, 한양대 강사
현 군산대학교 문화사상연구소 연구교수
저서: '리처드 로티', '정보사회의 빛과 그늘'(공저)외 다수
역서; '사회정의에 관한 6가지 이론', '철학자 가다머 현대의학을 말하다'외 다수
/이유선(군산대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