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동물과 크게 구별되는 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인간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물론 동물들도 나름대로의 의사전달 수단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과 같이 고등사고와 감정을 정교하게 전달하는 수단으로서의 언어는 갖고 있지 않다. 언어학자 렌게커(R. W. Langacker)는 인간과 언어의 관계를 간단히 일컬어 ‘언어는 모든 인간 종(種)에게 공통한 것이면서, 인간 종만이 소유한 것’이라 하였다 인간이 언어를 소유하게 된 결과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가 되었고, 데카르트(R.Descartes)가 고백한 것처럼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하여 이성적 존재로서의 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se)가 될 수 있었다. 언어에 의해 인간만이 미래와 신(神)을 알며, 정치행위를 통해서 사회생활을 하는 호모 폴리티쿠스(homo politicus)가 되고, 문화를 창조하고, 예술을 즐기며, 교육 행위를 하게 된다. 특히 호모폴리티쿠스로의 인간에게 있어 언어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정치는 대부분 언어, 특히 음성언어인 말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정치인에게 있어서 말이란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전달하는 기본적인 요소이다. 정치인에게 있어서 가장 큰 덕목은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고, 그 전달수단은 대부분 말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정치지도자들의 말 한마디는 국민들에게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더구나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더욱 그러하다. 대통령에게 있어서 말은 자신의 감정을 가감없이 표출하는 수단이라기보다는 말을 통해서 일정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정치행위의 연속이라고 보아야 한다. 더구나 공식석상에서 국민과 언론을 상대로 말을 할 때는 단순한 말 이상의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취임 초부터 기존의 잘못된 권위들을 무너트리겠다고 공언하였다. 그래서 취임 후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검사들과 토론회를 가졌다. 대통령이 일개 평검사들과 마주앉아 갑론을박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대통령의 권위적인 모습도 벗어버리고, 대한민국의 가장 공고한 권력기관이라고 하는 검찰의 권위적인 모습도 무너트리자는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이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대통령의 탈권위적인 모습에 많은 지지를 보냈었다. 이후 노대통령은 공식 비공식자리에서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원고없이 즉석에서 많은 말을 하였다. 그러나 주로 말을 듣는 것보다는 말을 하는 편이 많았다. 말을 통해서 국민과의 소통을 원한다고 하였으나 대통령의 말이 있고 난 후에는 소통보다는 갈등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통령은 언론이 자신의 말을 왜곡하여 전달하기 때문에 자신의 본심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일부 수긍이 가는 대목이 있지만 모든 책임을 언론 탓으로 만 돌리는 것은 무리인 것 같다.
대통령은 말을 통해서 국민을 통합시킬 수도 있고, 분열을 불러올 수도 있다. 국민들은 말이 많은 다언(多言)의 대통령과 정치인들에 대해서 지친듯하다. 참여정부는 이제 국정을 마무리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자천타천의 여야의 잠룡(潛龍)들은 이미 수 많은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부터가 매우 중요하다. 대한민국호의 선장인 대통령은 국민을 향해 많은 말을 쏟아내기 보다는 국가의 중심추로서 말을 아끼며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가는 모습을 보여줄 때이다. 때로는 다언(多言)보다는 신언(愼言)이 더욱 큰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2007.1.23, 전북일보 전북칼럼)
※약력: 군산대학교 법학과 교수, 군산경실련 집행위원장, 한국법학회 학술담당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