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사람'중심 전북근대교육 100년사 - 김형권

김형권(군산교육문화회관 관장)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근대(modern)는 무엇인가? 사실 근대를 말하는 것에는 많은 부담이 따른다. 시대 설정의 애매모호함과 근대에 일어난 역사적 사실은 언제나 논쟁의 불씨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왕조의 몰락과 근대의 시작, 일제 강점기와 해방의 기쁨, 전쟁의 시련과 계속되어지는 이념 대립 등은 웃으며 이야기하기가 왠지 부담이 간다. 하지만 역사는 물처럼 흘러간다. 그리고 그 속에 떠가는 배처럼 우리가 있다.

 

근대는 왕조가 무너지고 일제의 강점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어떤 사람은 말한다. 또는 근대의 출발을 자발적이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는 훌륭한 반면교사이다. 어차피 미래의 역사도 자유와 평등, 성장과 분배, 보수와 진보의 대립으로 인해 때로는 적으로 때로는 동지로 공방을 벌일 것이기 때문이다.

 

근대교육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는 사회학적인 접근보다는 풋풋한 사람 이야기 중심으로 문제를 인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교육은 역사와 함께 시작됐다. 성균관, 사학, 향교, 서당…. 이런 이름들이 지금의 대학교,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의 형태를 띠고 1895년 ‘소학교령’ 공포 전까지 민족의 교육을 감당하고 있었다. 사실 1883년 원산의 유지들이 세운 원산학사나 1882년 한미통상조약으로 통역관을 길러내기 위해 1883년 세워진 영어학교, 1885년 아펜젤러 목사가 세운 배재학당이 근대교육의 기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소학교령이 공포되는 때를 같이하여 서울에 관립학교들이 세워지는 때를 근대교육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옳다. 그리하여 1886년 9월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관립학교인 육영공원(育英公院)이 1894년 갑오개혁과 함께 폐교되고 배재학당이 육영공원의 학생들을 승계하여 교육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자생적인 근대교육은 근대 민족 교육의 대세를 이루던 사립학교, 선교사 학교, 관겙片냘閨났湧?민중들에게 호감을 주기도 하고 비판을 받기도 하며 1908년까지 5,000여개 이상이 되는 학교가 설립되게 된다.

 

우리 전북지역에도 1897년 전주초등학교를 필두로 1900년 전주기전여자고등학교, 1900년 전주신흥고등학교, 1906년 남원용성초등학교, 1907년 전주완산초등학교, 1907년 군산중앙초등학교, 1908년 익산웅포초등학교, 1908년 정읍고부초등학교, 1908년 무주초등학교, 1909년 김제만경초등학교, 1909년 고창무장초등학교, 1909년 고창흥덕초등학교, 1910년 전주농림고등학교, 1910년 정읍제일고등학교와 같은 학교들이 개교하게 된다.

 

바야흐로 교육계에도 민선 자치시대가 도래했다. 뿐만 아니라 머지않아 효자동 신청사 시대를 연다.

 

이때야말로 근대교육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지 써야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의 교육이 사회 선발기능에 편승하여 방향성을 잃어가는 현상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나 교육을 꼭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어느새 훌쩍 흘러버린 100년의 근대교육을 정리하지 않고 새로운 민선시대를 열면 지난 이야기들은 황량한 벌판에 남겨진 옛 풍경이 되어버릴 공산이 크다.

 

우리 지역민들은 앞으로 쓰여질 빛바랜 교육이야기를 읽어가며 잊을 뻔했던 자아(自我)를 찾기도 하고 어쩌면 옛 친구를 찾아 인터넷 카페를 방문하거나 고향 학교를 향해 가며 마냥 행복해 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