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대통령선거판

정당이라는 게 권력을 좇아 헤매는 부나비들의 정거장 같은 곳이라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나, 요즘 열린우리당의 행태를 보면 참으로 '정당무상'을 실감케 한다. 불과 4년 전, 지역주의를 타파하고 새정치를 하겠다며 당 깨고 권력 쫓아간 그들이 이제 와서 태도를 1백80도 바꿔 또 당 깨고 새정치를 하겠다니 '정치인들에게 정당이란 과연 무엇인가' 실로 깊은 회의를 갖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사분오열하며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는 동안 제1야당인 한나라당은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으며 대권 프로젝트를 차근차근 진행해 나가고 있다. 그 결과 열린우리당 대선 후보군이 10% 미만의 지지율에 머물고 있는 반면, 한나라당 후보군은 30~40%대의 높은 지지율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이명박 박근혜 후보에게는 벌써부터 '유력'이라는 수식어가 붙어다닌다. 여론조사 내용대로라면 게임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유력 대선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로 압축되다 보니 같은 당 후보끼리 조기에 본선을 치르는 듯한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먼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대선 후보 주자에 대한 검증을 제의하고 나서자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나처럼 애를 낳아 봐야 보육을 이야기 할 자격이 있고, 고3 수험생을 키워 봐야 보육을 할 자격이 있다"며 박 전 대표를 공격했다. 이에 박 전 대표도 "군에 안 갔다 온 사람은 국국통수권자가 될 수 없는 것이냐"며 이 전 시장의 공격을 정면으로 맞받아쳤다. 선거판에서 후보들끼리 충분히 오고갈 수 있는 공방이다.

 

한데 한나라당 안팎에서 이 작은 공방에 대해 너무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어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지나친 감정대립으로 가면 분당될 가능성이 있다' '잘못하면 한나라당이 대선 3수를 할 수 있다'는 등 별별 걱정거리를 다 만들어내는 것이다. 선거가 도둑놈 장사 지내듯 할 수 있는 것인줄 아는 모양이다.

 

이를 지켜본 김영삼 전 대통령이 모처럼 명언을 했다고 한다. "선거는 조용히 치르면 안된다. 아주 시끄러워야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다. 더 시끄러워도 된다" 한나라당 원조격이자 정치 9단이 경험에서 우러나온 훈수를 한 것이니 그냥 지나칠 말은 아닌 것 같다. '부자 몸 조심'도 너무 심하면 거부감이 든다는 것 몰라서 그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