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권2 경문대왕조에 보면 ‘여이(驪耳)설화’라고도 불리는 이야기가 실려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경문왕이 왕위에 오른 뒤 귀가 자라서 나귀 귀처럼 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런 왕의 모습을 아는 이는 단 한 사람뿐이었다. 두건을 만드는 복두장(輹頭匠)은 경문왕의 비밀을 지키다가 죽을 때가 되어서야 도림사(道林寺) 대나무숲에 들어가서 “우리 임금님 귀는 나귀 귀와 같다”고 사실을 말했다 한다. 그 뒤부터는 바람이 불어 대나무가 서로 부딪칠 때마다 소리가 났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보편적인 내용이다. 이런 이야기는 해야 할 말을 못하고는 살 수 없는 인간의 속성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공판중심주의 재판은 재판 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편하게 한다. 그동안 조사를 받게 되는 상황에서 피의자가 느끼는 심리적인 압박감은 결코 작지 않았다. 법률적인 지식이 충분치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자신이 받은 질문에 어떤 식으로 답변을 해야 옳은지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영화에서처럼 변호사가 동행을 해서 도움을 주는 그런 환경은 서민들에게 현실적이지 않다는 점에서도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런 공판중심주의 재판이 되기 위해서는 준비해야 될 것 또한 많다. 재판과정이 예전보다 길어질 수밖에 없어서 법원과 검찰, 변호사 모두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굳이 공판중심주의 재판이 아니라 하더라도 사건은 많고 사람은 부족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재판 과정에서 수반될 수 밖에 없는 거짓말에 대한 대비책 역시 해결해야 할 문제로 꼽는다. 선서를 한 상태에서 심문의 결과 또는 쟁점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간주되는 허위증언을 고의로 하는 위증은 그 거짓말로 인해서 심문의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에서 그 해악이 크다.
최근 위증을 교사한 피고인에게 실형이 선고되었다. 공판중심주의 정착을 위해서 엄벌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들은 있었지만 실제로 위증죄를 양형 이유로 들어 징역형을 선고한 것은 처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피고인이 말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는 만큼 거짓말 역시 상대적으로 늘어날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현명한 판단과 재판을 기대해 본다.